락페 가고 싶다
내 여름의 낙은 페스티벌이다. 여름이면 페스티벌이랑 콘서트 가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놈에 코세글자 때문에 올해는 아예 아무것도 못하게 됐다. 분기에 한 번씩 콘서트 가는 사람인데 코**가 심해진 이후에 페스티벌은커녕 올림픽 경기장 입구도 밟아보지 못했다. 이게 사람 사는 건가? 너무 슬프고.. 슬프다..
락페 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쓰는,
왜 락페를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 혹은 락페에서 뭐가 재밌는지 설명하는 글이다.
1 음악을 좋아하는 자에게 천국
락페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짐 검사를 하는데, 아주 덥고 습한 날 그걸 기다리면서 짜증이 나기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훨씬 크다. 입구에서부터 음악 소리, 함성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음악이 나를 부르는 느낌. 얼른 짐 놓고 살 거 사고 슬렁슬렁 돌아다니면서 오늘은 어디 어디를 갈지 친구와 얘기한다. 내가 꼭 봐야 하는 가수 친구가 꼭 봐야 되는 가수가 다르기 때문에 갈라져서 보기도 하고 같이 보기도 한다. 체력이 될 때는 펜스도 잡았지만 안 되면 뒤에서 봐도 재밌다. 아는 노래 나오면 미친 듯이 따라 부르고 소리 지르고 뛰고 춤추고 돌아다니고 힘들면 잠시 앉아서 쉬었다가 뛰고 싶을 때 또 뛰고 이걸 하루 종일 할 수 있다. 그냥.. 천국임.
보통 3일권 끊어서 2시쯤 아레나에 도착해서 밤 12시까지 놀다가 집에 가서 기절잠자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 싸와서 에어컨 나오는 실내에서 도시락 까먹고 덜 더워지면 밖에 나가서 구경하고 한참 놀다가 배고프면 저녁 먹고 또 놀고 음악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렇게 천국인 곳이 또 없을 거다. 캠핑하거나 주변에 숙소 있는 사람들은 새벽 시간대도 즐기던데 나는 3일을 놀아야 하고 내 체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벽에는 거의 놀아본 적 없다. 만약에 1일권 끊었으면 나도 한 번쯤은 그렇게 놀았을 것 같다. 락페나 이디엠 페스티벌이나 비슷하긴 한데 락페는 라이브 공연을 듣는 거니까 훨씬 더 음악에 집중할 수 있다. 현장에서 함성과 함께 듣는 보컬+드럼+기타 조합이 기가 막힌다. 아 쓰다 보니까 락페 너무 가고 싶다 제발 락페에.. 보내줘...
2 딱히 나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락페에 갈 때 입고 싶은 거 맘대로 입고 다니는 사람인데, 거긴 그러고 와도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다. 딱히 사람한테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고 공연을 즐기는 관객으로 참여한 거니까 포커스가 무대에 가있는 느낌. 내가 뭘 하고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서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 든다. 머리에 꽃을 얹고 가도, 양갈래를 하고 가도, 거긴 원래 그런데다. EDM 페스티벌은 훨씬 더 세게 꾸미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상탈은 기본이고 와 나 이렇게까지 입는 건 오바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고 가도 절 대 오바가 아니다. 나보다 200배 오바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인데 뭐.
그렇다고 빡세게 꾸미고 가야 하나? 그건 아니다. 나도 보통 1일 차에 제일 빡세게 꾸미고 3일 차쯤 가면 아무거나 편한 거 입고 다녔다. 예쁘게 입고 다니면 기분이 좋으니까 꾸미고 다니는 거지. 누구 보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만족이다. 내가 오늘 세상에서 제일 즐겁게 놀 것이기 때문에 내 외관부터 세상에서 제일 즐겁게 놀 것 같은 사람으로 준비하고 가겠다는 느낌. 나름 스스로가 정한 TPO를 맞춰보는 거다.
한국은 보통 떼창 포인트가 암묵적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에 가보면 안다 이걸 다들 떼창 할 건지 말 건지. 그렇게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거 말고 너무 좋아하는 노래는 나도 모르게 단전에서부터 노래가 나온다. 막 흥분해서 소리 지르고 뛰다 보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나랑 비슷하게 그러고 있다. 이상하게 춤춰도 뭘 해도 범법행위만 아니면 뭐든 다 괜찮은 곳.. 락페.. 온몸으로 노래를 즐길 수 있어서 좋다.
3 뭘 먹어도 얼추 다 맛있다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면 정말 흥겨운 것처럼, 술 마시고 락페 들어가면 그것도 그거대로 재밌다. 락페에서는 너무 뛰고 골 아파서 술 마셔본 적이 많이 없는데, 이디엠 페스티벌에서는 보드카 마시고 뛰었더니 두배로 재밌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과음하면 절대 안 된다. 탈수로 실려갈 수도 있음. 이디엠 페스티벌은 물을 파는 데를 찾기 어렵고 대신에 술 파는데 밖에 없더라고? 가격이 싸진 않았는데 그래도 맛있었다. 좀 덜 날뛰어서 술 마시니까 재밌었던 것 같다. 락페는 음악 들으면서 날뛰느라 술 마실 틈도 없었다. 50분 공연 보고 앉아서 쉬다가 또 보러 가고 3일 차 헤드 나올 때쯤에는 기진맥진해서 돗자리에 누워서 자고.. ㅋㅋㅋㅋㅋㅋ 오죽하면 락페 시즌 오기 전에 체력 기른다고 운동하고 그랬으니까. 내가 이렇게 락페에 진심인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아 펜타포트에 들어와서 유명해진 김치말이 국수가 내가 다닐 때 즈음에는 모든 페스티벌에 다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뛰다가 김말국 먹으면 진짜 말도 안 되게 맛있다. 더울 때는 시원한 국물에 국수죠. 페스티벌 가서 먹는 김치말이 국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김치 말이국수 이틀 연달아 먹어도 맛있었던 것 같다. 기억이 조작된 건가? 근데 진짜 맛있었어. 움프에서 먹은 김말국도 맛있었어.
*나름의 락 페스티벌 팁
가기 전에 오늘 나올 라인업 노래를 다 들어보고 가는 걸 추천한다. 모르는 밴드라도 듣다 보면 좋은 노래가 많은 경우가 꽤 많다. 그리고 그렇게 노래를 다 아는 채로 페스티벌에 가면 두배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원래 내가 아는 노래가 많을수록 즐거우니까요?
옷은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없는데 아무 데나 앉아야 될 상황이나 뛸 일이 많이 생기니까 앉는데 불편한 짧은 치마나 너무 긴 바지는 피하는 게 좋다. 신발은 웬만하면 편한걸 신길 추천한다. 슬리퍼도 하나쯤 가져가면 좋다. 더운데 땀 흘리면서 뛰다가 쉴 때도 신발이랑 양말 계속 신고 있는 거 답답하다.
물은 반입 여부를 살펴본 다음에 하나쯤 들고 들어가는 게 좋다. 얼음물으로. 쿨링 시트, 손풍기, 쿨링팩 같은 건 많이 챙길수록 좋다. 잘못하면 더위 먹음. (처음 락페 갔다가 더위 먹고 온 사람) 선크림 선스틱 챙겨가서 자주 바르고, 선글라스 필수다.
자기 체력은 자기가 제일 잘 알 테니 체력 조절해가면서 뛰는 게 중요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억지로 펜스 잡고 있으면 실려나갈 수도 있음. 콘서트에서 펜스 잡고 버티다가 뽑혀나가는 사람 여럿 봤다. 적당히 앉아서 볼 때는 앉아서 보고 서서보기도 하고 괜찮으면 좀 더 앞으로 가보고 그럼 된다. 페이스는 본인이 조절해야 됨. 과음 절대 금지.. 땀 많이 흘리는데 술도 많이 마시면 황천길 직행 버스 타고 가는 거다.
에너지바 같은 거 한두 개 챙겨가면 중간에 배고플 때 요긴함. 보조배터리 필수품이고, 락페에 사물함이 있으면 사물함에 짐 두면 되니까 이것저것 들고 다닐 수 있지만 이디엠 페스티벌 같은 경우는 보통 그런 시설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짐을 최소한으로 들고 다니는 게 좋다. 난 틴트 빗 핸드폰 이어폰 보조배터리 이 정도만 들고 갔다. 웨이스트 백 들고 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락페는 좀 더 많이 챙겨도 된다. 체감상 더 하드코어니까.
좋아하는 밴드 노래 목 터지도록 따라 부르고 흥겹게 뛰다가 땀나면 잠깐 쉬었다가 친구랑 노가리도 까고 해지기 시작하면 노을도 봐주고 모기 퇴치 스프레이 뿌리고 돗자리에 앉아서 저녁 먹고 해지면 더 쟁쟁한 밴드 노래 들으면서 뛰고 난리 치다가 난리 난 목소리로 저기 가자고 말해서 옆 아레나로 넘어가고 내한한 아티스트 노래도 따라서 보다가 힘들다고 다시 돗자리 가자고 하면 돗자리 가서 누워서 자다가 헤드 끝날 때쯤 깨서 잠깐 보고 집에 갈 준비 하고 내일은 또 누구 볼 지 생각하면서 집에 가고 싶다. 좋아하는 헤드면 조금씩 앞으로 가서 인트로 나오기 전까지 세상에서 제일 긴 10분 보낸 다음에 미친 듯이 뛰고 즐기는 한 시간 보낸 다음에 터덜터덜 쑤시는 다리랑 허리 붙잡고 집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