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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름 Aug 04. 2020

자본주의를 버린 채 바라보는 아이돌 시장

   


   자본주의를 버린 채 아이돌 시장을 들여다보면.. 여긴 천국과 지옥 그리고 정글 그 사이 어디 즈음에 존재하는 다른 세계 같다. 가끔 천국인 것 같다가, 지옥인 것 같다가, 무한경쟁의 정글인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앞선 게시물에서 말한 것처럼 돈이 되기에 아이돌 시장에 뛰어든 기획사들은 가끔 길게 바라보기보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시도를 한다. 과도하게 많은 스케줄을 잡는다든지,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돼?라는 이동 경로의 스케줄을 잡는 식으로 잘 될 때 한 탕 해보자! 는 마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12월에 내 본진은 시카고, 뉴욕, 미네아폴리스를 넘나드는 미주 스케줄을 1주 동안 수행한 뒤에, 한국에 입국한 다음날 아육대를 나가고 아육대에서 조퇴하는 기상천외한 스케줄을 소화한 후 당일 오후 일본으로 출국했다. 일본으로 출국해서 2일 동안 콘서트를 한 후에 다시 한국으로 귀국한 뒤 같은 주에 사우디 아라비아 축제를 참여하기 위해 출국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스케줄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이 스케줄을 뛰다가.. 멤버 한 명은 무대가 끝난 뒤 응급차로 실려갔다. 비행기에서 호흡곤란 증세가 와서 비행기에서 내렸고. 일반 직장이었으면 산재로 처리되고도 남을 일인데 고작 아이돌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중 앞에 선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것들을 견뎌야 할까? 보이는 것만 해도 이런데 안 보이는 곳에서 이 악물고 견디는 이들로 가득한 이 시장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인기와 부는 달콤하겠지만, 외로움, 마음의 병, 아픈 몸은 평생 안고 가야 한다.




   심지어 12월은 연말 무대도 있기에 이 모든 스케줄이 시작하기 전에 일본에서 마마를 하고 이 스케줄이 끝난 뒤에는 가요대전 가요대축제 가요대제전을 돌았다.




   정리하자면, 12월 한 달만에 한국 출국- 일본 마마 - 한국 입국- 시카고- 미네아폴리스- 필라델피아- 뉴욕- 한국 입국- (아육대)- 같은 날 일본 출국- 2회 공연- 한국 입국- 사우디 출국- 한국 입국- 한국 연말 무대 3회 진행(모두 특별 무대 포함)의 스케줄을 끝냈다는 말이다.




   모두가 이런 스케줄을 뛰진 않지만 '인지도를 쌓은' 대부분의 아이돌은 얼추 이런 스케줄을 뛴다. 끊임없이 해외투어를 돌고 다시 한국에 입국해서 스케줄을 뛰고 다시 또 해외에 나가는. 소속사마다 며칠 간격으로 스케줄을 잡느냐만 다를 뿐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고 해도... 이렇게 스케줄을 뛰다 보면 한계가 보이지 않을까? 실제로 1월에 열린 서가대에서 참여 라인업 중 아주 많은 그룹들은 한 명이 없는 채로 공연을 했다. 다리 부상, 마음의 문제 등으로 모두 쉬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 쉴 수는 없는 걸까? 일을 하지 않으면서 밖에 쉴 수 없는 이 극한의 상황을.. 팬들은 두 눈 똑바로 뜨고 견뎌야 한다. 내가 견디지 않으면 애들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아이돌의 근로환경은 너무나 열악하다. 이들은 몸도 마음도 돌볼 시간이 없다.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시간이 없다.' 팬들은 하루 중에 자기 얼굴보다 애들 얼굴 보는 시간이 더 많은데 얼굴이 피곤하면 거의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단지 말을 하지 않는 것뿐이지.




   설 끝난 뒤에 나타난 멤버들은 오랜만에 얼굴에 살도 좀 붙고 훨씬 살 것 같은 얼굴이라 팬들 사이에서 우리도 이제 좀 살겠다는 반응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 설이 정-말 오랜만의 휴가였던 걸로 안다. 애들 얼굴도 뽀얘서 이제야 안심하고 무대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이게 사는 거지라는 반응이 많았다고. 무대 찍으러 가는 사람들도 그동안 내내 오늘 표정 괜찮았지? 오늘은 그래도 안 힘들어 보였지?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런 아이돌이 수도 없이 많다. 다리 다쳤는데 무대 하다가 무대 끝나고 기어 내려와서 부축받고 병원 갔다는 아이돌 다리 다치고도 일본 콘서트 하러 휠체어 타고 출국한 아이돌 다리 다치고 무대 서는 건 예삿일이고 손목부상 당해서 손목 아대를 차고 다니던 아이돌 무릎 수술하고 흉터 보이기 싫어서 커버업한 아이돌 어깨가 안 좋아서 항상 어깨 아대를 차고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아이돌 그 어깨 춤 추다 다친 거냐고? 장난하나 진@짜*사\ 나이 가서 다쳐온 게 안 나아서 1년 넘게 지났는데도 아직도 어깨 아대를 하고 나온다.




   몸은 평생 쓰는 건데 무릎 발목 몸 곳곳을 다친 채로 극한의 스케줄을 뛰는 사람들 천지다. 몸만 아프면 다행이라는 끔찍한 말을 내 입으로 해야 될 만큼 마음이 아픈 경우도 많다. 마음이 아파서 활동 중단한 아이돌이 한둘이 아니다. 마음이 아픈 아이돌을 쉬게 하는 팬 마음이 어떤 줄 아나? 기약 없이 떠나보낸 다음 뛰다가 다시 넘어질라 천천히 돌아와 하고 바란다. 활중하는 멤버들의 마음은? 다들 쉬기에 집중했다고는 하지만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잘 먹여야 잘 자라 또 황금알을 낳지 지금처럼 배 가르고 황금알을 꺼내려고 하는 시도가 계속된다면 이 산업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도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연예 댓글 창을 한 곳만 닫는 게 아니라 동시에 닫아야 하고,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기 어려우면 휴가필수제라도 도입하든지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꼭 쉬어야 하게끔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획사 단위로 정신상담이 어려우면 인공지능 상담이나 뭐든 스트레스와 우울을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한다.




   아이돌은 정신적으로 극한에 몰리면.. 그들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의 연예인이 그렇듯 '친구'라는 걸 사귀기 힘든 환경에서 어릴 때부터 연예계에서 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고립되는 경우도 많다. 팬들에게 얻은 유대감 사랑 다 좋지 근데 일반인으로서의 자아도 잘 유지해야 그가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방법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줬으면 한다. 제도가 있어야, 제도를 활용할 사람들은 하고 아닌 사람들은 혼자서 방법을 강구할 게 아닌가?




   본격적인 '케이팝 아이돌' 시장이 시작된 게 얼추 3세대 아이돌부터라고 가정했을 때, 벌써 우리가 이름을 잘 아는 세명의 아이돌을 떠나보냈는데 모두 3세대 아이돌이라는 게 이상하지 않나?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그들 모두 동시대에 활동했던 아이돌이라는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름들도.. 2017년 이후에 종종 있었다. 이름이 크지 않아서 이슈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지속가능한 케이팝 산업을 만들고 싶나? 그렇다면 내부의 금부터 메꾸고 밖을 살펴보길 정말 간절히 기원한다. 나는 케이팝 산업이 오래 건실하게 이어지길 바라는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사회면에서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언제까지 소 잃은 외양간을 고치기만 할 건가. 그러니 제발, 몸과 마음을 지키게 해 줘라.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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