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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름 Nov 07. 2020

예술과 우울의 관계




예술은 우울에 근거하지 않는다. 이 말은 내가 믿는 예술관의 기둥이다. 영감은 우울로부터 발생할 수 없다. 모든 예술적 천재성이 우울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천재는 태생적으로 가난하고 우울하고 이런 서사를 아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천재 화가라고 불리는 고흐는 정신병을 앓다가 귀를 잘랐으며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뮤지션들과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누군가가 천재성에 대해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었을 경우 그 캐릭터가 애정결핍이라거나 우울증이 있거나 가난한 서사도 흔하다. 이 주제를 놓고 친구랑 한참 얘기를 했는데, 왜 사람들이 예술과 우울이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지에 대해서 활자중독 두 명이 토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먼저 말했듯이 영감은 우울로부터 발생할  없다. 이건 내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기도 한데, 영감은 우리가 글을   있는 상태일 때 찾아온다. 내가 성실하게 글을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라면 영감은 나를 맴돌다가  다른 곳으로 떠난다.  얘기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얘기를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주제를 까먹게  경험이 모두에게 있을 텐데, 글은 아무래도 말보다는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보니까 내가 노동을   있는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영감이  혹은 다른 예술의 형태로 출력되어 세상에 나올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도 내가 마음을 먹고 브런치를 켜서 책상 앞에 앉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를 맴돌다가 그냥 사라져 버렸을 주제였을 것이다. 때문에, 우울=예술이라는 공식은 성립할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예술가들이 우울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은 우울과 가까이 있다고 우리가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예술가가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딛고 명작을 만들어냈다는 서사가 잘 팔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데, 우울한 나머지 불우한 생애를 보낸 예술가 a가 만들어낸 작품과 평탄하게 산 예술가 b의 작품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기억에 남을까?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한다. 전자의 서사는 일단 자극적이고, 우리는 작품을 통해서 어떻게든 작가의 생애를 들여다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우울이 담겨있다면서 수용자들이 작품을 자꾸 해석하고 그것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다 보면 그 작가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잘 팔리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의 임팩트 있는 이야기- 여성편력, 우울증-같은 것들이 대중의 인식에 강력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예술가는 우울하다, 라는 명제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영감을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창작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예민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고, 생각이 많아지면 그것이 정신의 고통으로도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예술가에게 무엇을 맡겨놓은 것처럼 창작을 새로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창작이란 매 순간 똑같이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떤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당연히 존재해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고, 그로인해 우리가 빈번하게 정신적 고통을 겪는 예술인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가는 불우하다, 라는 명제도 사실 오래되어 폐기해야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예술가가 탄생하고 그들이 기억되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예술의 영역이 돈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분야가 되었기에 불우하고 가난한 예술가는..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질 것 같다. 또 요즘 사람들은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유튜브에 xx만원 명품 언박싱이 성행하는 것만 봐서도 사람들은 이제 환상을 산다 해도 행복에 관련된 것을 사기를 원하지 그 반대의 것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글을 쓸 때 이것만큼은 절대 쓰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자해와 죽음을 조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을 것,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선에서 올바름을 지킬 것, 우울 혹은 정신적인 고통을 동경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너무 자세히 다루지 않을 것, 이런 것들이 있다.



예전에 미학을 배울 때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배우긴 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학자들이 하는 말이 전부 구식같았다. 완벽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 예술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 혹은 순수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부 낡은 것 같았다. 내가 믿고 지지하는 예술은 그런 게 아닌데, 나의 예술관은 그렇지 않은데 책 속의 아저씨(대부분 남자)들이 하는 얘기를 들을 때 막말로 꼬장꼬장 영감탱 당신이 뭘 안다고! 하고 외치고 싶은 심경일 때가 많았다. 우울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나는 뿌리부터 반골 정신으로 점철된 인간인가 보지.



많은 이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예술가란 우울함에 도취되어 담배를 끄나물고 가끔 예술적 행위를 하는 사람이겠지만 내 머릿속의 예술가는 일정한 시간 이상 끊임없이 자기 일을 하면서 자기의 피와 살을 떼어 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물론 예술가들이 술 담배를 많이 하는 것은 동서고금 아주 흔한 이야기지만 우울은 예술에 필연적이지 않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예술이 향해야 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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