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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Sep 22. 2020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 이민 생활을 하며 외로움을 많이 탔던 나에게 유독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유학생 친구들이 몇몇 있다.


그런 친구들은 딱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거나, 소식을 주기적으로 듣고 있지 않더라고 그냥 가끔 문득 떠오른다. 그런 친구들은 대부분 나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더라. 나 또한, 그 친구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함께 일을 한 친구이자 직원과 큰 마찰이 생긴 시기가 있었다.


처음으로 정말 가까웠던 사람과 소송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정말 가까웠던 사람과 남보다 못하는 사이가 되어버리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사이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 아이러니하고 마음이 아팠다.


다른 것보다, 내 감정이 피폐해지는 것이 느껴져서 괴로웠다. 난생처음 인간관계라는 것 자체에 회의감이 든

시기였다. 그로 인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졌고,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노력들을 하기가 싫었다. 오죽했으면 근무시간이 아닐 때의 연락들은 아예 받질 않았다. 그만큼 사람에 질리고, 또 어찌 보면 나라는 사람 자체에도 질리게 된 시기였다. 나라는 사람이 별나서, 예민해서,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이러한 일을 겪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SNS를 통해 DM (다이렉트 메시지) 요청이 왔다.


DM을 보내온 친구는 13년 전,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1년간 같이 다닌 친한 언니였다. 언니는 가끔 술을 마시면 내 생각이 났다며, 그날따라 유독 내가 보고 싶어서 온 SNS를 뒤져 나를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순간, 먼저 찾을 생각을 안 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언니에게 너무나 고맙기도 했다. 나를 기억해주고 있어서, 그리워해 줘서. 나라는 사람을 잊지 않고 보고 싶어 해주고 있었다는 그 마음이 너무 예쁘고 또 고마웠다. 언니는 나와 함께했던 뉴질랜드에서의 유학생활 1년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더라.


언니는 13년 전 뉴질랜드를 떠날 때 내가 선물해준 곰 돌이 머리핀과 편지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나 조차도 잊어버린 기억인데,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 선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마웠다. 만원도 안 하는 그 녹슬고 오래된 머리핀을 “소중한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구나. 나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자 좋은 친구로,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은 결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


세상엔 생각보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진 않고, 이미 얽힌 관계들은 점점 더 어지럽게 얽혀가기 마련이다. 나를 힘들게 만들고, 내 마음을 피폐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감정을 낭비할 필요 없다. 남에게 모두 맞춰주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나와 맞지 않는, 혹은 무례한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기억하자.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이며,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태어난 것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히 넘치는 사람들이다.


어떤 누군가에게 나란 사람의 존재가 13년 동안 버리지 못하고 소중히 품고 있는 곰 돌이 머리핀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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