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리 Sep 24. 2020

나는 예민한 내가 참 좋다

난 지랄 맞고, 까다롭고, 예민하다

28년을 살면서, 나는 내가 굉장히 착하고, 무던한 성격의 사람인 줄 알았다.


어릴 적부터 “참 성격 좋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소위 ‘여장부’ 스타일의 아이였는데, 털털하고, 낙천적이며 안 좋은 일들은 금세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나름) 그렇다.


그렇게 나는 스물여덟,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성격 좋고 쿨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내 주변에 진짜 지랄 맞은 사람들 많은데, 그중에서도 넌 역대급이야,”라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나만큼 성격 좋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 얘기를 다른 친구들한테도 우스갯소리로 전했더니, 다들 수긍하며 끄덕였다.


그때 처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엄청 지랄 맞고, 까다롭고, 무진장 예민한 사람이란 것을. 그 사실이 꽤나 쇼킹했다.


물론 나의 이런 예민한 성격 덕분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이 쉽지 않다.


나는 남에게 곁을 잘 내주지 않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가린다.

까다롭게 관찰하고, 예민하게 판단하여 내 곁에 둘 사람인지 아닌지를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생각하고 판단한다. 내가 정말 의지하고 좋아하는 소수의 사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선을 선명하게 그어 두기도 한다. 이런 내 모습에 때로 남들은 서운해하기도 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귀고 가까워지는 것이 정말이지 어렵다.


예민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버겁다. 


예민한 사람들은 남들이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하루 종일 고민기도 하고, 또 쉽사리 상처 받기도 한다.


상처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도 못한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까 봐 혼자 삭히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린 소심한 사람들이다. 예민한 사람들의 진짜 장점은 따로 있는데, 지나가는 말투, 분위기, 뉘앙스…… 흘러가는 사소한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도 캐치할 수 있는 감각을 갖고 있다. 남들은 쉽게 넘어가는 작은 디테일들을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예민한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것에 상처 받고, 많은 것에 아파해보았기 때문에 그만큼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상대방의 감정은 하나하나 과하게 신경 쓰면서 왜 내 마음에는 그렇게 신경 쓰지 못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타인의 감정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내 감정에 대한 집중은 떨어지기 마련인데……


상대방의 감정에는 그토록 예민하게 신경 쓰면서 정작 나 자신의 감정에게는 조용히 하라고 호통치며 하나하나 쌓아둔다. 풀지도 않는다. 그냥 그대로 쌓아만 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처럼 그냥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는 그토록 예민하면서, 왜 나 자신의 감정에는 그토록 무딘 걸까.



나는 예민하고 민감한 나 자신이 참 좋다.


남들을 배려하고 이해할 줄 아는 나 자신이 참 기특하고 예쁘다.


나의 지나친 예민함은 나의 결점이 아니라 나의 타고난 재능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남이 아닌 나에게도 좀 더 예민해 보려고 한다.


내가 오늘 왜 행복했는지, 왜 우울했는지, 왜 화가 났는지, 왜 예민했는지 생각해보려 한다.


남보다 나 자신의 감정에 먼저 귀를 기울여볼 거다. 스스로의 감정을 예민하게 잘 파악하는 사람이야 말로,

타인의 감정에게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일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