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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an 08. 2016

나이 드는 것은 '찌질'해지는 것


지인은 사십 평생을 걸쳐 알아낸 중요한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세상에 쿨한 사람은 없다. 쿨한 척하는 사람만 있을 뿐.


며칠 전에 엄마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십 년 전 당시 13살이었던 남동생이 평생 한 집에서 같이 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관을 매장할 때도 옆 무덤에 올라 미끄럼을 타며 천방지축으로 놀아제꼈다면서

남동생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매사에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남동생을 보면 지금도 엄마는 그런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 배우인 마리아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신입사원에게 '찌질하게' 매달리며 사랑을 갈구하는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아한다. 마리아는 쿨하면서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젊고 매력적인 신입사원 역할을 하고 싶지만 이미 마리아의 나이는 사십을 넘었다. 


사랑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나는 분명한 차이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이 차이가 많을수록 당연히 차이 또한 커지고,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많다면 많은 원인이 나이차에 있을 수 있고,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있다면  한쪽이 무리해서 노력하는 경우일 것이다. 아마도 나이가 많은 쪽이겠지만.


왜냐하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주름을 얻게 되듯이 감정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스무 살의 감정과 마흔 살의 감정은 그 깊이가 결코 같을 수 없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스무 살과 마흔 살 모두 기쁘겠지만, 스무 살의 기쁨은 가볍고 활력이 넘치는 반면 마흔 살의 기쁨에는 쓸쓸함이 깃들어 있다.

그 오묘한 감정을 아무리 설명해 준다고 한들 스무 살은 꽃치마 입고 꽃놀이 갈 생각에 바쁘고, 마흔 살은 그런 스무 살이 예쁘다 싶으면서도 질투가 난다.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처럼 나이도 감정도 당해보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다. 



나이 어린 사람은 쿨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쿨하다. 

아직 할아버지의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무슨 감정이 일어나는지 눈치채지 못 한다. 

슬픈 감정이 일더라도 주변 눈치가 보이고 당황스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감정을 숨기기도 한다.

첫사랑은 감정에 서툰 두 사람이 벌이는 총체적 재난이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감정은 진짜로 사랑을 깨닫게 되면서 점차 진하게 우러난다.

어릴 때는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에 도취되어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기도 어렵고, 타인이 상처를 주면 단칼에 관계를 끊는 것도 가능하다. 절교를 밥 먹듯이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상처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랑을 알게 되면, 스스로에게 관심을 쏟았던 만큼 타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사람은  '찌질'해진다.

질투, 조바심, 걱정으로 소심한 사람이 되고 사랑의 감정을 숨기지 못해  칠칠치 못하게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스무 살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주책'으로 보이고 저런 어른은 되지 말자고 결심하는 원인이 된다.


스무 살은 그 자체로 당당하고 아름답다. 젊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다.

그 나이의 사람들이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고 마구 상처를 준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상처를 주면서도 상처를 주고 있는 자신의 멋진 모습만 사랑할 뿐 타인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 스스로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남에게 관심 가질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무관심과 잔인함은 진심이면서 무심이고, 그리고 언젠가 그들 역시 변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반면 마흔 살은 사랑과 애정이 넘치고 별거 아닌 일에도 눈물바람으로 청승맞다.

사사로운 일에도 온 힘을 다해 신경을 써서 김장이나 아이들 결혼, 집들이 등을 치르고 나면 금방 지쳐서  몸져눕게 된다. 너무나 타인들을 신경 쓰다 보니 생겨나는 병이다. 

사랑의 감정을 겪은 후에,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 더 의미 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식을 나은 사람들은 더욱 '찌질'한 축에 속한다.

아이가 조금만 열이 올라도 화들짝 놀라고 첫돌이며 입학을 챙기기 위해  헐레벌떡하다 보면 마음이 분주해서 쉽게 지치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아직 겪어보지 않은 나이라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사사로운 일에 마음을 쓰는 것이 정말 타인에 대한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청춘의 아름다움을 잃고 방황하던 자아가 애정을 쏟을 그 무엇이 필요해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궁금해하고 추측해볼 뿐이다. 


나는 스무 살과 마흔 살의 딱 중간 나이로, 시시각각 '찌질'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별것 아닌 일에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걱정하면서 살피게 된다.

그렇게 청승맞은 짓을 저질러 놓고는 이제까지 나이 많은 사람들의 청승을 그렇게 구박해놓고 스스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아직 얼굴에 주름은 눈에 띄게 는 것은 없는데 마음의 주름은 빠르게 잡혀간다.

가끔은 내가 청승맞아 보이긴 해도 다채로운 감정들은 좋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영화들이 늘어가는 것도 좋다. 

그래서 나이 드는 일은 슬픈 것만은 아니라 신기하고 새로운 일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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