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세 Mar 04. 2016

기이한 현상



여대 근처 지하 카페에 앉아있다가 기이한 현상을 보았다. 

검은 생머리의 마르고 길쭉한 여학생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카페 구석에 앉아 있던 여학생 둘을 향해 차례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인사하는 학생들은 종이인형처럼 순하고 깍듯한데

인사를 받는 선배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저들끼리 커피만 마시고 있다.

아무래도 후배들의 인사를 씹어야 선배다운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모든 시기를 거친 연장자 눈에는 이 모든 것이 희극처럼 보인다.

후배들은 선배들을 무서워하는 척 하면서도 자기들끼리 모이면 선배들을 무시할테고,

선배들은 태연하고 무심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후배들한테 무시당하는 순간이 올까봐 무서워한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 한 상태에서 

인사하고, 인사를 씹는 전통만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는 누가 몇달 먼저 태어났는가가 중요하고 

학생 때는 한 살 차이가 백 살 차이보다 무섭다. 

서른살은 서른살 이전의 사람과 이후의 사람으로 구분하고,

마흔이 지나면 열살 차이의 사람도 아무렇지 않다.

더 나이가 들면 십년의 차이도 이십년의 차이도 무의미해 지고

단지 그 사람이 살아있는가 죽어있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각각의 나이엔 각자 중요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저 대학생들에게 선후배 사이의 예의가 중요하듯이.

하지만 얼마 전 <동주>를 봤기 때문일까,

분명 비슷한 나이인데 

윤동주의 고민과 저 대학생들의 중요한 것들이 엄청난 차이가 나게 느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중요하다고 믿어야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일까.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 죽기를 기다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