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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Mar 14. 2016

우리 개는 다양하게 늙어간다

  우리 개는 세네 달에 한번 이발을 한다. 우리 집은 개에게 사치를 부리지 않는 집이라서 미용으로 보기 좋게 깎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실용적으로 거의 삭발을 시킨다. 동물들에게 수북한 털은 귀여움의 상징인데 그걸 완전히 삭발해버리고 나면 너무나 적나라한 개의 알몸이 드러난다. 개 스스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속옷도 안 입고 밖에 나가는 것처럼 우리는 어색함을 느낀다. 초라하고 못 생겨진 개에게 어색함을 느끼는 게 왠지 미안하고, 낯선 동물병원에서 바리깡에 몸을 떨어야했을 개가 가여워서 평소보다 더 귀여워해주는 척을 한다. 그렇게 몇 달만에 털 속에 가려졌던 개의 피부를 살펴보면 우리 개가 많이 변했고 또 많이 늙었음을 깨닫게 된다. 늙은 개한테는 시간이 더 빠른지 불과 몇 달 만에 검은 반점이 늘고 근육이 빠진 자리엔 살이 늘어지고 몸 이곳저곳에는 쌀 알갱이 같은 지방종도 많아졌다. 참 여러 모로 다양하게 우리 개는 늙어간다. 나도 늙고 있는 사람으로서 먼저 늙어가는 개를 관찰하는 것은 예방주사 같은 위안도 되고 왠지 서글프기도 하다. 이미 늙어버린 할머니한테서는 신체의 공감대를 찾기가 어렵지만, 어리고 젊었다가 하나하나 서서히 늙어가는 개를 보면 그 늙음이란 것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나한테도 언젠가 늙음이 오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겉이 늙고 속도 늙는지 우리 개는 부쩍 코를 골게 됐다. 그것도 소곤소곤 고는 게 아니고 드렁드렁 할아버지처럼 우렁차게 골아서 다른 방에 있던 동생하고 내가 윗집에서 누가 소리 지른 게 아닌가 하고 놀래서 서로를 바라본 적도 있을 정도다. 내가 새벽까지 안 자고 있을 때 그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서 개랑 같이 자고 있을 할머니가 깨지는 않을까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뒤늦게 우리 할머니가 귀가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바로 코앞에서 개가 코를 심하게 골아도 우리 할머니는 내가 느끼는 음량에 반도 못 느낄 것이다. 나는 갑자기 같이 늙어간다는 말의 의미가 고마워진다. 누구 한 명이 젊거나 늙으면 서로 이해하지 못 하고 다투는 일이 많을 텐데 우리 할머니랑 개처럼 같이 늙어가면 쓸데없는 일에 목숨 걸지도 않고, 적당히 귀찮고, 적당히 안 들리고, 적당히 안 보이게 돼서 싸울 일도 적도 하루도 특별히 피곤한 일 없이 적당히 넘어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랑 개를 보니까, 늙음이 나한테만 오는 게 아니고 나와 비슷한 또래에게 같이 온다는 게 감사한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루하루 늙어가는 일들을 신기해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늙고 싶다. 그러면 혼자보다는 쉽게 늙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그래도 저 할멈보단 내가 덜 늙었다는 그런 교활한 생각이라도 하며 하루를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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