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람들처럼
내 활동반경이 구멍가게와 문방구뿐이었던 시절,
부모님은 동네 시장에서 통닭 장사를 하셨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해서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정리를 하셨으니
십 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킨 것이다.
가끔 그 옆 가게에서 참기름과 말린 고추를 팔았던 아줌마를 만나면
장삿일로 바빴던 엄마를 대신해 내게 젖을 물렸다는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요새 젊은 엄마들한테는 문화충격일지 모르지만
그때는 미세먼지도 없고 세균에도 둔감한 시절이라
아기는 여러 손을 타고 여러 젖을 먹으며 자랄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온화한 편이지만 아빠는 다혈질이다.
그래서 옆집, 그 옆집, 시장 위쪽의 라이벌 통닭집 사람들과 수시로 싸웠던 것 같다.
아빠와 싸운 시장통 아저씨들도 모두 젊었을 때라 싸움은 크게 벌어졌고,
한 번은 아저씨 한 분이 술에 취한 채 우리 집 근처에 찾아와 우리 아빠 본명을 부르짖으며
'나와서 붙자'고 소리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 놓고 며칠이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빠와 아저씨는 또 모여서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서 장사하는 처지라 어쩔 수 없이 화해를 한 건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 시장통에서는 말싸움도 몸싸움도 자주 벌어졌고 화해도 어렵지 않았다.
그런 시장의 분위기,
고춧집 아줌마도 만둣집 아줌마도, 진짜 엄마한테 혼나서 우는 나를 품어주는 내 또 다른 엄마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아줌마들에게 외상 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고,
그들의 가게에서 뭔가를 얻어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내가 머리가 커서 부끄러움을 알기 전까지는,
시장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가족이었고 나도 그들의 딸이었다.
어제 <오베라는 남자>를 보고 '이웃'이란 말이 왜 이렇게 새삼스러웠는지 모른다.
가게들이 다닥다닥 모여있던 동네 시장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이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도 없다.
근접한 곳에 명목상의 이웃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도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쭈뼛거리다 기회를 놓치게 된다.
저녁식사에 이웃을 초대하는 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고
요새는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는 일이 대유행이라고 한다.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혼자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사회학자의 분석이 쓸쓸했다.
나에게도 가장 어려운 것이 대인관계이고, 그래서 <오베>를 혼자 보러 왔나 싶어서.
근데 어릴 적에 아빠를 생각해보니까
대인관계란 원만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화해하는 일의 반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오히려 관계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르게 생각해보면 원만하다는 것은 이도 저도 아닌 것이다.
겉으로만 원만한 관계가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좀 더 다른 사람에게 관대해져야겠다.
누군가 잘못을 하고 그에 대해 사과한다면 뒤끝 없이 깔끔하게 용서해주자.
'친구 차단'같은 간편한 방법 말고 지질하고 끈덕지게 관계를 연명해보자.
나를 아프게 하는 그 사람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어보자.
그리고 싸워야 할 때는 용기를 내서 싸우자.
이탈리아나 중국 사람처럼 미친 듯이 싸우고 아무렇지 않게 화해하자.
얼마나 개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