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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n 12. 2016

안목이 트일 때

피식한 행복

늦은 새벽, 영화를 보자니 피곤하고 그냥 자기엔 아쉬운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지인의 추천으로 받아 놓은 영화 <문스트럭> 파일이 눈에 띄었고

오늘은 피곤하니 맛보기로 오프닝만 보기로 했다.

그런데 5분쯤 보았을까, 그냥 감이 왔다. 

이 영화는 어마어마하게 내 취향이어서 나는 오늘 이걸 끝까지 보고야 말 것이고,

영화의 감흥 때문에 쉽게 잠들 수 없을 거라는 직감. 

불길한 예감이 틀리는 법 없듯이 이런 갑작스럽고 절대적인 직감도 틀리는 법이 없다. 

나는 그냥 직감을 당하는 것이고 받아들일 뿐이다.

내 예상대로 <문스트럭>은 나에게 풍성하고 깊은 행복을 주었음은 물론이고

이제는 내게도 좋은 영화를 알아보는 안목이 생겼음을 알려주기도 했다.

 

어떤 영화가 대박이고 쪽박을 칠지는 죽어도 모르겠지만

어떤 영화가 좋고 나쁜지는 영화 10분만 보면 대강 알 수 있게 됐다.

영화뿐 아니라 어느 분야든 절대적인 경험치가 쌓여야 얻을 수 있는 '감'들이 있다.

요리사들은 식당 간판만 봐도 느껴지는 것이 있을 거고

코미디언들은 상대방의 얼굴만 봐도 유머감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특별히 훈련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순전히 경험치로만 쌓아야 하기 때문에 얻기도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 경험치가 나도 모르게 쌓이고 있었던 것일까.

'딱 보면 안다'는 선배들의 말을 실감하게 되다니.


안목, 보는 눈, 감, 센스...

너무나 갖고 싶지만 어디서 살 수도 없고 훔칠 수도 없어서 더 욕심나는 것들이다. 

나는 겨우 영화 분야에서 얕은 안목을 얻어낸 것뿐이지만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 무형 재산인지!

주머니에 동전 한 푼 늘어난 것 없지만 마음은 부자가 된 기분이다.

나도 드디어 보는 눈이 생겼다! 그걸 깨달았을 때의 행복감.. 

다른 사람들은 쓰잘데 없다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밤이 되었다. 


아무도 몰래 좋아했다. 그 순간만큼은 혼자 즐기고 싶었다. 

사실 아무도 이해해줄 것 같지 않아서 혼자가 즐기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나 영화 보는 안목이 생겼어. 대단하지?' 

너무나 시시해서 자랑할 수도 없는 행복함. 


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안목이 형성되면, 

내 안목을 알아보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쉬워진다는 것을 안다.

척하면 딱 아는 사이.

안목을 쌓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고,

또 나와 맞는 사람들을 찾아나가는 일과 같다. 

다시 말하면 자기 안목을 키우지 못 하면 좋은 안목을 가진 사람도 알아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미처럼 조금씩 경험치를 쌓으며 안목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건 내 정체성에 근육을 만들어 주는 일과 비슷하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맞바꿀 수도 없이, '감'은 온전히 내 것이고 '나'라고도 말 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자아가 그만큼 튼튼해지는 기분이 든다. 

돈으로 치장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내 노력으로 가꾸어진 나.

나만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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