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세 Jun 15. 2016

시적허용


10시쯤 일어난다. 오늘처럼 우중충한 날은 조금더 자고 싶다.

조금더 자도 되지만 그렇게 하면 영영 누워있게 될까봐 일어나야 한다.

버릇처럼 사과를 먹으면서 오늘을 뭘 해야 할지 고민하며 시계를 본다.

나 같은 한량은 시계 볼 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이때쯤엔 직장인들이 밥을 먹겠구나, 졸려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약간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시간을 쪼개서 바쁘게 쓴다는데

나는 시간을 너무 허술하게 풀어두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시간이 나랑 마주 앉아 사과를 먹으면서

오늘도 느릿느릿 가주겠다, 하지만 한달과 일년은 눈깜짝할 사이에 갈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협박을 한다. 

겁먹지 않은 척 했지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무서워진다. 

나는 원래 알람 소리에 일어나고, 학교종에 민감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제멋대로 살고 있다는 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

자진해서 종아리를 걷고 언젠가 날아들 회초리를 기대하며

뭔지 모르겠지만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나는 이 세상의 시적허용 같은 존재다. 라고.


틀렸지만 틀리지 않았다. 

일부러 정확하게 틀려서 새로운 감흥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국어책에서 찾으려고 하면 안 되고

시집이나 낙서에서 찾아야 한다.

누구를 위로하고 누구를 웃게하는 작은 시적허용.


존재에 목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존재의 방식 같은 것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시적허용 같은 방식으로 존재해야지.

굵은 동그라미를 치고 공감각적 심상... 같은 필기가 적히는 그런 시적허용.





매거진의 이전글 스타벅스야 미안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