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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n 17. 2016

잘 보이고 싶었어요

대림시장 자발적 강제 먹방


돌이켜보면 어제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예전에 알던 피디님의 초대로 <우리 연애의 이력> 영화 시사회에 갔었는데

피디님을 비롯한 영화인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때문에 숨이 막혔다. 

지독한 현장 경험을 한 후로, 영화사에 다니면서 영화판의 뒷모습을 알게 된 후로 

영화인들을 보면 불편하고 긴장하게 된다.

아마 거기에는 '작가님'으로 소개될 때마다 흠칫 놀라는 내 자격지심도 한몫하겠지.


하필 <우리 연애의 이력>도 영화판에 몸 담은 감독과 배우 이야기가 아닌가.

매우 불편했지만 피디님한테는 재밌었다고, 불러줘서 고맙다고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영화인들 자체가 불편한 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불편한 것이 아닐까.

나는 내가 사회생활을 끔찍하게 못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사회생활'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오면 긴장해서 실수도 많이 하고 무리수도 두게 된다...

그게 끝나면 얼마나 피곤하고 공허해지는지. 

금수저 다음으로 부러운 게 사회성 타고난 사람일 정도다. 


극장을 나오자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서인지 배가 고팠고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결국 남자 친구를 불러내서 완전 새로운 곳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꼬드겼다.

나를 아무도 몰라서 사회생활이 전해 필요하지 않은 곳, 우리가 정한 곳은 대림역 근처의 대림시장이었다.


대림시장은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곳으로 사방이 중국인 투성이고 간판은 거의 읽을 수가 없다.

그 갑작스러운 혼란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난 완벽한 이방인으로 아무에게도 잘 보일 필요도 없고 신경 쓸 것도 없으니까.


'마라탕'이란 것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가게 간판 자체를 읽을 수가 없으니

무작정 감을 믿고 가게를 선택했다. 수십 가지 메뉴 중에 설마 마라탕이 없겠나 했는데.. 없었다.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식 사진만 수십 가지...

그렇다고 식상한 꿔바로우만 먹고 돌아가기도 왠지 찜찜해서 한참이나 메뉴를 들썩이는데

웬일로 숫기 없는 남자 친구가 옆 테이블의 아저씨 아줌마에게 메뉴 추천을 부탁했다.

연변인지, 조선족인지, 낯선 억양으로 중국어를 섞어가며 추천해준 메뉴는

콩과 돼지고기를 볶은 요리였는데 어째서인지 콩알이 담긴 콩 주머니를 그대로 볶는 듯했다.

사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메뉴 추천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저 콩 주머니를 아예 안 먹잖아? 저건 먹는 게 아니잖아...

무척 찝찝했지만 선한 얼굴의 아저씨가 추천해준 걸 안 먹겠다고 하면 아저씨가 무안해질 것 같았고,

이왕 새로운 곳에 왔으니 정말 현지인스러운 걸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주문해버리고 말았다.


먼저 나온 양고기 만두는 황홀하게 맛있었다. 우려했던 콩 주머니 볶음도 괜찮았다. 

하지만 내 고질병은,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아저씨가 추천해준 음식이 맛있어서 이렇게 많이 먹어요'라는 신호를 보내고 싶었나 보다. 

평소에 내가 먹는 속도보다 급하게 먹었고,

왠지 많이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볶음요리의 느끼함을 참으며 꾸역꾸역 먹었다.

스스로도 미련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먹자고 되뇌었지만,

옆 테이블 아저씨가 맛있냐고 물어보면 또 먹방이 세지는 것이다.  

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련하고 쓸데없다.


결국 급체하고 말았다. 

신촌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며 토하기 시작해서

신촌 바닥 곳곳에 흔적을 남겨야 했다.

막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괜찮다 싶다가도 또 구역질이 나서 지하철을 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옆에서 걱정해주는 남자 친구도 고역이겠다 싶고 위액까지 토하고 나니 괜찮을 것 같아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하철역 청소하시는 분들.. 죄송합니다.


집에 오는 데 한 시간 반도 넘게 걸렸다. 그렇게 지하철이 느리고, 흔들리고, 냄새나는지 몰랐네.

어젯밤에는 금주저, 사회성 좋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건강한 사람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저렇게 지하철에 앉아서 스마트폰 보며 집에 간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 

나는 토 할까 봐 식은땀을 흘리며 초조해하는데 말이다.


내 몸이 아파 죽겠으니까,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은 전혀 되지 않았다. 

원래는 평상시 건강할 때 나를 그렇게 중요시했어야 하는데

나는 주변 사람을 배려한다고 나를 혹사시키다가 탈이 나고 만다.  

이런 괴로움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잘 보이고 싶은 병'을 치료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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