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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n 18. 2016

허세가 나빠, 냉소가 나빠?

SNS에 뭘 올려야 하죠?


배탈이 심해서 새벽까지 앓고 있었다.

아픔을 잊으려고 억지로 잠을 청하는데 우리 집 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분명하다)

침대에 올라오더니 내 옆에 누워주었다.

평소에는 거실에서만 자던 놈이 내가 아프다고 위로해주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다.

웃긴 것은 내가 그 아픈 와중에도 인증샷을 찍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는 것이다.

우리 집 개가 이렇게 기특하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내가 아픈 걸 사람들에게 알려서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제는 거미줄만 남은 내 SNS에도 사진 한 장을 올릴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곧 그런 마음이 모두 사라졌다. 

핸드폰 찾느라 뒤척이다가 우리 개가 거실로 도망 가버릴까 봐 걱정되기도 했고

그걸 사진으로 찍으면 우리 개의 진심이 반토막 날 것 같아서였다.

우리 개는 아무 대가 없이 내 옆에 있어주는데

나는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사려고 한 거니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옆에 있지도 않은 전파 친구들의 위로보다는

내 옆에 있는 우리 개의 위로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떤 순간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나 혼자 만끽하는 것도 황홀하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SNS에 사진 올리기를 거북해하는 건 남들에게 자랑할 게 별로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허세 부리는 걸 못 견뎌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다.

내가 허세 부리는 것도 그렇고 남이 허세 부리는 것도 참고 보기가 힘들다. 

사진에 숨겨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유치한 속마음이 보일 때마다

유치하군, 난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쌓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 검열이 심해져서 이 사진은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상황에 빠졌고

결국 아무 사진도 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여기에는 아무에게도 욕먹고 싶지 않은 내 욕심이 깔려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올리지 않으면 욕먹을 일도 없으니까. 



그러다가 요새는 '허세가 나쁜가? 아니면 냉소가 나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것저것에 냉소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사람보다는

허세가 원동력일 지라도 이것저것 도전해보는 사람이 활기차고 건강한 게 아닐까?

좀 더 고급진 허세를 부리기 위해 좋은 카페를 찾고, 좋은 장소를 찾고 하다 보면

그만큼 경험도 많아지고 취향도 갖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요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낫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됐다. 

그러고 나니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SNS를 눈팅하게 됐고

삶을 살아가는 각자의 방식도 존중하게 됐다. 

사람들이 살면서 뭔가 하고 있다는 게 굉장히 아름답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게 나와 다른 방식이라 할 지라도, 다르면 다른대로 좋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이 너그러워졌다고는 해도

우리 개와의 시간을 인증샷으로 남겨서 SNS에 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랑해야 할 것과 느끼고 깨달아야 할 것은 다르다. 

인증샷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면 후회할 테니까.

그러니까 어떤 순간들은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도 허세롭게 커피짤 ㅎㅎ 우리 동네 카펜데 센스가 좋다. 

이런 거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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