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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Dec 01. 2016

공동체의 달콤함, 씁쓸함

소속감, 소외감, 행복함, 허탈함에 대하여 

공동체의 달콤함, 씁쓸함


두 달 전부터 헬스장을 다니고 있다. 기적적으로 두 달이나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멱살을 잡고 헬스장으로 끌고 가 준 동생과 체력의 끝장을 봐야만 개운함을 느끼는 운동 멤버들 덕분인데, 소위 '하드 캐리'라 불리는 열정적이고 극성맞은 사람들이다. 나처럼 끈기가 부족한 사람들은 그런 열정적인 사람들을 매우 귀찮아하면서도 더 이상 귀찮아하는 것도 귀찮아서 마지못해 끌려가는 경향이 있다. 하기 싫고 그만하고 싶다고 궁시렁 대면서 하자는 대로 다 따라 하는 나 같은 사람, 그리고 그런 나를 조련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열정적인 사람.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이지만 나름대로 궁합은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헬스장에서 함께 트레이닝을 받는 운동 멤버들은 내 또래의 여자가 반이고 40대 중 후반의 여자가 반이다. 나이만큼 체형도 다양하고 운동 경력이나 체력도 각기 다르다. 집요한 여자가 있는가 하면 두루뭉술한 여자가 있고, 대장부 같은 여자, 아이 같은 여자, 불만쟁이, 깍쟁이 등 성격도 천차만별. 서로 몇십 년을 모르고 살다가 운동하겠다고 모인 것뿐이니, 운동복 입은 것 빼고 모두 다른 것은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독했던 지난여름, 일주일에 세 번씩 모여 혹독한 운동을 하다 보니 오합지졸에도 전우애 같은 것이 생겨서 만나면 반갑고 나도 아주 오랜만에 소속감이란 것도 느끼게 되었다. 실금실금 웃음이 나왔다. 나에게 소속감은 무척 어려운 감정이라서 어떤 공동체에 속하든지 소속감보다는 소외감을 느끼는 편이었다. 소외감은 소속감이 생기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나를 질투 많은 좀생이로 만들곤 했다. 소외감에 휩싸이면 모든 게 나를 빼고 돌아가는 것 같고, 내가 그 사람들한테 뭘 잘못했나 싶고, 말 걸기도 조심스러워지고, 그래서 점차 찌질해지는 찌질이의 굴레 같은 그런 것.


헬스장은 감정보다 육체가 우선하는 장소여서 일까. 미묘한 감정에 얽매이기보다는 각자의 몸에 집중하며 복근 운동 200개, 스쿼트 300개를 마스터하다 보면 아무 말 없이 하이파이브를 촥!하고 때리기만 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 후에 하는 단체 샤워는 또 어떤가. 서로의 알몸에 비누칠도 해주고 새로 돋아나기 시작한 근육도 칭찬해주고, 이번엔 어디 어디가 아팠는지 엄살을 부리고 위로를 받다 보면 어느새 내일을 기약하며 개운하게 돌아서게 된다. 사실 소속감이란 이렇게 일상적이고 사소하고 별것이 없다.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들을 나누는 것. 그러다 보면 다른 일들도 함께 하고 싶어 진다.


아, 우리는 얼마나 해산물 뷔페를 고대했던가. 트레이너가 우리에게 연말 선물로 해산물 뷔페를 쏘겠다고 했던 2주 전부터, 우리의 모든 대화는 뷔페에 맞춰졌고 대망의 날에 스시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미친 듯이 운동에 매진했다. 아무리 운동이 힘들어도 곧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지나는 것이 행복했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을 때, 우리는 뷔페가 오픈하기 훨씬 전에 도착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얼마나 잘 늘어나는 고무줄 바지를 입고 왔는지 보여주었으며, 가게 유리창 너머로 진열되기 시작한 해산물을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서는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 열정적인 먹성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힘들었던 운동에 대한 보상 감과 모두 함께 부족함 없는 식사를 나눈다는 만족감, 그리고 유쾌하고 부드럽게 흘러갔던 대화까지. 나는 공동체가 주는 행복 속에서 평소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다는 말이 맞다면, 나는 우리 멤버들의 입속으로 한없이 들어가던 횟점의 넉넉함을, 그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 같다. 


절정 뒤에는 하락이 있고 녹색불 다음엔 빨간불이 들어오듯이, 공동체에도 어떤 흐름이 존재한다. 각 구성원의 개성이 뚜렷한 만큼 모두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은 어느 한순간에 불과한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심적으로 애석한 것은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각자의 체력이 다르다면 운동량도 달라야 한다. 똑같은 운동량에 누군가는 불만이 생겼고 결국 우리 공동체는 운동량이 많은 반과 적은 반으로 갈리게 되었다. 공동체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고 각자의 모임일 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씁쓸함이 불쑥 일었다. 


나도 변하고 너도 변한다. 모두의 마음이 맞는 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결국 모든 공동체는 약해지고 흩어질 수밖에 없고, 함께 했던 일은 모두 과거가 되어 한 때의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그걸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도 뻣뻣하고 어색한 단체사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찍을 때는 숨고 싶지만 나중에 다시 보면 그럭저럭 잘 나온 단체사진. 좋았던 기억만 떠오르는 그런 순간들.


그런 행복한 찰나의 순간, 타인과 마음이 맞는 그 순간을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개인의 생각이 희생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체는 불협화음이고 불완전하고 갈등이 생기다가 해체되고 말 것이다. 그것이 씁쓸하다고 해도 억지로 되돌릴 필요는 없다. 개인은 각자의 길을 가고 거기서 또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어울리면 될 테니까. 건강하고 활기찬 그런 공동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사람들 간의 갈등으로 힘들어진다고 해도 사람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변한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태도로 공동체의 변화를 느끼면 된다. 조금 달콤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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