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세 Nov 28. 2016

언제 손을 놓아야 하나


나는 오래된 기억에서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흔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유치원 시절도 몇 개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여전히 그때의 생각이나 감각이 생생한 것이 놀랍다.

나의 어리고 순한 맨살이 세상에 닿았던 최초의 순간들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듯 하다.  

처음으로 뜨거운 다리미의 쇳면을 만졌을 때 그 고통은 어렴풋하지만

그 뜨거움을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과 호기심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찬가지로 유치원의 같은반 아이들에게 느꼈던 사랑이나 두려움, 호기심과 질투의 감정도 떠올릴 수 있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어린 시절에 느꼈던 최초의 감정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유치원 때의 기억 중에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야외였으니까 소풍이나 나들이를 나갔을 때였던 것 같다.

조무래기 원생들은 둘씩 짝을 지어서 손을 잡고 이동했는데 내 짝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우리반 선생님이 나타나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는 다섯살이나 여섯살이었을 것이다. 그때 선생님이 내 손을 잡는 즉시 든 생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 손은 언제 어떻게 놓아야 하는 걸까. 손을 놓는 순간은 얼마나 어색할까.  


나는 선생님이 괜히 내 손을 잡아서 언제 어떻게 자연스럽게 놓아햐 하나 속으로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안가 선생님은 바글바글한 유치원생들을 챙기느라 내 손을 놓아야했고

나는 안도감과 편안함, 그리고 아쉬움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꼈다. 

결국 이렇게 놓을 거면서 왜 손은 잡아가지고. 처음부터 잡지를 말지.


이 때의 이 감정은, 손과 손을 맞잡는 아주 상징적인 행동이 암시하듯이, 

내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때의 감정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나는 벌써 이 사람과 어떻게 끝을 맺어야 하나 고민하고 두려워한다.

시작과 끝을 함께 떠올리며, 부정적인 관계의 결말을 상상한다.

내가 어떻게든 이 사람에게 실망을 주고, 결국 나를 떠나게 만들 것이란 생각 때문에

처음부터 관계를 맺고 싶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재밌게 해 줄 자신이 없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좋은 사람도 아니다.

당신은 나에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나를 떠나고 싶을 것이다.

언젠가 떠날 거라면 차라리 지금...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지. 

소설 속 주인공이 이런 연상을 하고 있으면 너무나 한심해서 소설을 읽기를 그만 둘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일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춰야 할 때마다 긴장하게 된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관계맺음은 더욱 어려워지고 요즘은 눈 맞추는 일도 힘이 든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쳐야 하는데 

너무 똑바로 바라보면 예의가 없는 것 같고, 자꾸 딴데를 보려고 신경쓰다보면 정작 대화에 소홀하게 된다.

어쩌다가 눈마주치는 일까지 어렵게 된 건지 모르겠다.

나이가 먹을수록 쉬워지는 일이 많아야 하는데 갈수록 어려워만 진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마다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보다 더 괴로운 것은

이런 고민을 나 혼자만 하고 있을거란 외로움이다.

소설 속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한심한 주인공이 있다면 다행한 마음에 울어버릴 지도 모르겠다.  


너는 참 한심하지만 나를 이해해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어차피 서로를 떠날 거니까 친해지지는 말자.


그렇게. 

결국 외로운 결론이라는 한심한 결말이라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허벅지가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