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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May 07. 2017

마음이 꼬인다

어쩌면 가족들이 이렇게 미울까.


어버이날이라고 교외로 간단한 외식을 다녀왔다.

그전에 오늘의 나의 컨디션에 대해 말해보자면,

어제 일 하다 말고 친구를 따라 연남동에 가서 한바탕 신나게 놀면서 체력을 소비하고

새벽엔 또 다른 동성 친구와 거의 섹스에 가까울 정도로 교감이 불꽃 튀어 늦게까지 잠을 미루었고

그래도 해야 할 일은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인지 선잠을 자게 돼서

결과적으로 아주 체력이 달리고 피로한 상태로 일어나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으로 '뽕'을 가득 맞은 몽롱한 상태가 아닐까 한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 있는 힘껏 교류하다 보니 방전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가 정작 애정을 쏟아야 할 가족 앞에서의 나는

피곤과 예민함으로 한껏 날카로워져 있었다.

가족들과 살가운 대화를 하기도 싫고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를 이해시켜드리는 것도 힘들고

식당의 부산스러움 때문에 가족끼리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도 짜증이 났다. 

가족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예민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나름의 방식대로 고기를 먹고 있는

가족들의 그 익숙함에 진절머리가 나면서 꼴도 보기 싫어질 때에는 좀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누군가를 한없이 사랑하고 싶은데 마음이란 놈이 고집불통으로 뒤돌아 있다.

내일이 어버인 날인데.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까 햇빛은 찬란한데 미세먼지가 뿌옇다. 

나는 대단한 패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게으름과 건망증 때문에 마스크를 안 쓴 것뿐인데

건강 염려증이 심한 아빠는 그러다 폐렴과 암에 걸려 죽을 거라는 저주로 나를 협박했다. 

내일이 어버이 날인데 내가 "나는 오래 살지 않을 거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아치자 

아빠는 버럭 화를 냈다. 내가 엄마 아빠 앞에서 자꾸 그런 식의 말을 한다고, 꼬였다고.

서운했는지 한동안 투덜거리더니 갑자기 허탈하게 웃는 것은 뭔가.

아빠는 자기도 이십 대 때에는 할머니한테 서른셋까지만 살 거라고 호언장담했는데

낼모레가 환갑이라는 사실이 어이없다고 했다. 

왠지 내 미래가 어이없이 웃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씁쓸하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목에서 모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창문 바깥은 뿌옇고 우리 가족은 차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떨어진 가게 매출에 대해서 체념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이번 대선에서 보수당을 찍어야 한다고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데

그 순간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모래 속에 파묻히는 느낌. 

조금씩 망가져가는 우리의 호흡기처럼 우리 가족 모두가 천천히 죽어가는 듯한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아빠는 곧 환갑이고, 할머니는 귀도 잘 안 들리는 데다가 틀니가 불편해서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낸다.

미세먼지는 연일 최악이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삐뚤어진 마음을 품고 총이 있었으면, 하고 있다. 

왜 어딘가 벼랑으로 몰려가는 느낌이 들까.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집으로 달려가는 이 차가 <델마와 루이스>처럼 벼랑으로 치달아 가는 거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영화에서는 나름 해피한 결말이었지만.. 우리는?


대선 하나로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현실이 나아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지금이 최악의 상황이고 앞으로 나아질 수 없을 거야, 라며

권총 자살하는 사람이 나 일까.

아니야, 나는 자살할 만큼의 용기도 없는 사람.

그냥 끝없이 투덜대며 체념하다가 환갑 넘게 살겠지.


언젠가 시인 김수영이 자기는 왜 작은 것에만 화를 내냐며 자기혐오를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비슷한 결인가 보다.

큰 것을 어쩌지 못하니까 순하고 힘없는 가족한테 화풀이를 하고 있었던 거지.

집에 와서 한숨 자고, 체력이 좀 보충되고 나니까 가족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세먼지보다 더 최악이었던 건, 오늘의 나. 

모래처럼 울적하고, <모래의 여자>가 떠올라 비관적이었던 하루.

아빠가 운전하는 차 뒤에 실려가면서 이어폰으로 혁오를 들었다.

모래바람 부는 비관적인 오월에서 대피할 곳은 혁오의 품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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