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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Jul 24. 2017

사촌,


나와 동갑인 고종사촌이 청첩장을 주었다.

작년부터 결혼하려고 열심이더니 올해 4월에 만난 남자하고 8월에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뭐가 그렇게 급하냐고 쏘니까, 너는 언제 하냐고 쏜다. 

나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고 돌아서서 사촌이 먹은 저녁 그릇들을 설거지했다.

평소에 바로바로 설거지하는 편도 아니면서 

사촌이 남편이며 시댁이며, 결혼 전날까지만 회사에 다니고 그만 둘 거라고 하는 말들을 

달그락달그락 설거지로 덮었다. 


내가 정말 결혼 생각이 없으면 사촌의 말들이 하나도 아프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결혼 자체가 부럽기보다는,

신분상승하는 사촌 옆에서 미래가 없는 가난뱅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배가 아팠던 거 같다.

나는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사촌이 비행기를 타고 꼭대기로 직행하는 장면을 멍하게 올려다봐야 하는 것이다.


저기에 사랑이 있을까.

나는 요즘 그런 게 없다고 생각해서,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사랑을 믿지 않아서 사촌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가 없다. 

신분상승이 좋은 거냐, 그 남자가 좋은 거냐, 

아니면 지겨운 인생에 새로운 이슈가 생겨서 좋은 거냐,

내가 그런 잔인한 질문을 할까 봐 묵묵히 설거지를 했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이면 전부 될 것 같겠지만

헤어져본 사람은 사랑을 의심하고 

그러면서도 또 바라고

하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사랑은 없다고 그렇게 믿는 것이다. 


사촌,

오늘 너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건 내 마음이 베베 꼬여서였지만

그렇다고 너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건 아니야.

그냥 내 마음이 쪼잔하고 복잡했던 거야.

너는 든든한 사람하고 사랑하고 있으니까

네가 이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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