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화된 아픔, 우리는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아픈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다. 경쟁과 성과지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채찍질하고 착취하는 세태야말로 비극 중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자아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사회가 제시하는 '비교적 안전하게 보이는 방향'에 순응하는 현대인들에게 삶이란, 오로지 생존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제시된 방향에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된 욕구를 억누르고, 생존을 위해 사회에 구속되어 사회의 부품으로 살아간다. 평생을 쳇바퀴 속의 햄스터처럼 열심히 달리고 간간이 주어지는 해바라기씨를 먹으며 '이 정도면 행복하지'라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가장 큰 문제는 계속되는 고통에 면역이 생겨 아파도 아픈 줄 모른다는 것이다. 힘들다고는 생각하지만 이 정도 고통은 고통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누구나 다 이렇게 살아간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종이에 손이 베어도 아픈데 사람들은 비록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종이에 손이 베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들에 이미 닳고 닳아 웬만한 상처에는 울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상처에 강해졌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것이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상처에 무뎌진다는 것은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되어 말기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말기가 되어서야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상처들도 그러한 맥락에서 비슷한 결과를 유추할 수 있다. 조직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친구, 가족 등 수많은 관계에서 겪는 고통들이 끝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천천히 마음에 스며든다. 고통스럽고 아프고 우울한 상황이 지속되지만, 매일이 늘 그런 상황들의 연속이고 일상이기에 그것에 무뎌지는 모순이 발생한다. 고통을 버텨내기 위해 고통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이런 모순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소소한 행복거리를 찾아다니며 차디찬 도시를 헤맨다.
울부짖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결국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다. 내 슬픔과 고통을 인정해버리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아프지 않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런 무의식의 향연에 우리의 자아는 속아 넘어가지만, 실상 속은 곪고 곪아 염증이 터져버리기 직전이다. 해소되지 않는 피로와 계속되는 무기력함이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는 방증임에도 우리는 우리의 멱살을 쥐어 잡고 앞으로 끌어당긴다. 지쳐서 울부짖는 내면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틴다.
우리는 모두 아픈 존재들이다. 살짝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약하고 연약한 그런 어른들이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감성적인 음악 뮤직비디오에 눈물로 얼룩진 댓글들이 끝도 없이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것을 보면 우리는 마음속에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아픔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이가 들면서 책임져야 할 게 많아지다 보니 스스로를 슈퍼맨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린 그저 몸만 커진 어린아이 일 뿐이다. 상처에 아파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눈물 흘려야 하는,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지치면 좌절도 해야 하는 연약한 어른이들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보듬어야 한다. 내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 고통에 공감해야 한다. 밤하늘을 보다가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으면 그렇게 눈물을 흘려보내야 한다. 책을 읽다가 가슴이 울컥하면 그렇게 그 감정이 해소될 수 있도록 가슴의 닫힌 창문을 살며시 열어줘야 한다. 아픔과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아픈 세상이고, 아파하지 않는 게 이상한 세상이 된 지 오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