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Project Bluebird

by 해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혹은 생존이 걸린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그 불쾌한 감각을 ‘불안’이라 부른다. 대개의 경우 이 불청객을 달래기 위해 따뜻한 위로를 건네거나 근거 없는 낙관주의라는 진통제를 삼킨다.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식의 말들 말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러한 진통제가 당신의 문제를 단 한 번이라도 뿌리 뽑아준 적이 있는가? 감정적 해소는 일시적일 뿐이며 심지어 해소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불안의 정체가 마땅히 불안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 초래된 것이 아닌 시스템의 오류로 인한 것이라면 다른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불안은 없어서는 안 될 감정이다. 불안을 느끼지 못한다면 위협과 위기 상황을 감지하는 신호 체계가 망가져 더 큰 스노우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스템의 오류, 즉 인지적 왜곡에 의해 초래된 불안은 위의 경우와는 다르다.
이런 종류의 불안은 사실 인지 시스템에서 발생한 ‘의사결정 알고리즘의 버그(Bug)’에 가깝다.


1. 판단하는 가중치가 왜곡되어 발생하는 노이즈(Noise)
불안이 엄습하는 순간, 우리 마음속의 계산기는 고장 나버린다. 평소라면 10만큼의 무게로 다가왔을 ‘실패의 가능성’이 갑자기 100, 1000의 무게로 부풀려진다. 통계적으로는 0.1%도 안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마치 내일 당장 일어날 확정된 미래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학의 영역이기 이전에 ‘데이터 오염’의 영역이다. 불안이라는 버그는 뇌가 ‘손실’에 지나치게 높은 가중치를 두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최선의 선택(The Best Choice)이 아닌 당장의 고통을 피하기 위한 ‘최악을 면하는 선택’만을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의사결정들이 모여 인생 전체의 궤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 ‘정답이 없는 문제'와 ‘정답이 있는 문제’의 혼동
우리가 마주하는 고민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인지적 왜곡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정답이 있는 문제(Tame Problem)란, 계산이 가능하며 공식을 대입하면 답이 나오는 영역이다. 이런 문제를 마주했을 땐 불안해할 시간에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예측하고 정량화를 통해 리스크를 수치화하는 순간 불안은 감소한다.

반면, 정답이 없는 문제(Wild Problem)는 이직이나 결혼과 같이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선택을 하기 전에 예측한 결과와 실제 선택을 한 후의 결과가 다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혼을 하기 전에 예상한 결혼 후의 삶과 실제로 결혼한 후의 삶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결혼 전과 결혼 후의 '나의 정체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불안이 시스템을 지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답이 있는 문제를 감정으로 처리하려 하거나 정답이 없는 문제를 예측할 수 있고 계산 가능할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필요한 것은 예측과 계산이 아니라 불안이라는 ‘감정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나아가는 결단 그 자체다.


3. 결국 위로가 아닌 ‘구조’
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인지적 왜곡을 줄이고 사고의 흐름을 바로잡는 도구를 고민한다. 감정은 파도와 같아서 잠시 가라앉힐 수는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일은 다르다. 나만의 기준을 세워 구조화 해두면 불안이 몰려올 때 현재의 상황과 감정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많이 단순화 했지만 불안을 느낄 때 나는 아래 세 가지에 대해 생각한다.

(1)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리한다.
가장 먼저 불안 요소 중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낸다. 내 통제권 밖의 일들은 ‘소음’일뿐이다. 그것들을 고민의 목록에서 지워버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용량이 확보된다. 사건 그 자체와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을 분리해서 적어보면 지금의 두려움이 실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머릿속이 만들어낸 허상인지가 명확해진다.

(2) 손실을 재정의한다.
불안은 종종 작은 실수를 인생 전체의 실패로 부풀린다. 이때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자문해야 한다. 이 일이 잘못된다고 해서 내 삶이 영구적으로 망가지는지 아니면 더 나은 길을 가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수업료’인지 질문한다. 우리가 겪는 리스크의 대부분은 삶을 무너뜨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성장을 위해 기꺼이 내야 하는 입장료일 뿐이다.

(3) 객관적인 기준을 대입한다.
감정 대신 미리 정해둔 ‘삶의 원칙’이나 ‘판단 기준’에 문제를 대입한다. 길을 잃었을 때 내 감을 믿고 헤매는 대신 내비게이션을 켜는 것과 같다. 왜곡되었을지도 모를 감정이라는 뿌연 안개를 거치지 않고 객관적인 규칙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훈련은 불안이 의사결정을 왜곡시키고 더 나아가 내 삶을 쥐고 흔드는 것을 최소화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안하고 익숙한 곳에 머물려 한다. 불안에 쫓겨 당장의 안락함만을 선택하는 삶은 생존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나다운 성취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끌려다니는 삶이다.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당신이 지금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문 앞에 서 있다는 증거다. 그 긴장감을 고통으로 느끼며 주저앉을지, 아니면 도약을 위한 에너지로 삼을지는 오직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막연한 두려움에 휘둘리는 사람은 제자리에 머물지만, 그 두려움을 분석하고 이용하는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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