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었던 그림, 14년만에 다시 시작하다.
쥐뿔도 모르고 모사만 해 댈 시절에는 그냥 중간 먹 진한 먹 연한 먹 들고 화면 여기저기에 칠하고 다녔다. 아. 뭐, 그래서. 내가 지금 쥐뿔을 안다는 건 아니다. 그때가 지금보다 더 몰랐다는 거지. 다만 이 과제는 교수님께서 전공 필수 교과 과정으로 지정해 놓았기 때문에, 학교를 자퇴하지 않는 이상 이건 무조건 해내야만 하는 거였다. 곽희 님의 조춘도.. 이 어마무시한 그림을 다시 그리는 건 15년 만인가? 대학교 3학년 때 과제전으로 냈던 작품이니.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자발적으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다시 조춘도와 마주했고 그림의 한 부분, 한 부분. 놓치지 않고 진지하고 무겁게 임했다. 그리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은, 먹이 엄청나게 잘 마르는 건조한 계절에 그린 그림이다. 이 부분 그려내고, 화면 만들어 내고. 마르는 동안 또 저기, 정신 없이 그리고. 그러면 순식간에 말라 있고. 그랬구나. 지금 내 그림을 검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 때보다 얻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구나.
과거에 작업하며 곽희의 임천고치를 수도 없이 읽었지만 애를 둘 낳으면서 뇌도 들어냈는지 다 까먹었다. 그리고 내가 그리면서 느낀 바를 하나하나 기록했고 다시 임천고치와 대조해봤다. 일치하는 바가 많았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리는 순간 완전히 박곽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그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싶다. 옛날에는 교수님이 여기 봐, 조그만 강아지 하나 있지. 여기 봐. 여기도 사람 있지. 알려 줬을 때에야 겨우 깨달았었다. 생각해 보면, 떠 먹여 줘도 먹지를 못했네.
삼원근, 그런 거 모르겠다. 그냥 그렸을 거다. 그냥 그린 걸 거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그리고 뭐 좀 부족해보인다? 그러면, 붓 들고 뒤에서 가만 보고 있다가 조형적으로 추가할 것은 추가하고. 그걸 미술사적으로 있어 보이게, 그럴 듯하게. 사람들이 이름을 붙인 것일 테지. 나는, 다시 그리는 입장에서 이 부분, 여기. 그런 것들 조금 옮겨 그리고 추가해 그리고 그랬지 뭐. 똑같게만 그리는 건 의미가 없으니 이 정도라도 해야지.
그리고 뭐, 이왕 그릴 거라면 열 점 정도는 그려야지. 그래야 과거의 그분 발 끝의 방향이라도, 아주 털끝만큼이라도 알 수 있을 테니까. 과거에 불을 지피는 것이, 아주 오랜 시간 돋보기로 햇볕을 모아 열을 올리거나 나무의 마찰을 이용해 몇 시간을 비비고 비비고 또 비벼대야 가능할까 말까 한 작업이었다면 지금은 라이터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1초만에 간단하게 불이 켜질 정도로 간단한 작업이 됐다. 그말인 즉슨, 불이 필요하다는 본질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스킬>은 전 세계적으로 상향평준화 되었다는 말이다.
물감은 돈만 주면 살 수 있고, 비단도 종이도 그 옛날보다 구하기 쉬워졌다. 물론 질은 다르다. 비단의 질은 올랐으나 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이고, 한지는 돈을 얼마를 준다 하더라도 구하기 힘들어졌다. 일단 원재료인 조선 닥이 없고,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훌륭한 분들께서 대부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옛날에는 아교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지금은 만들어진 아교를 클릭 한 번으로 인터넷에서 아주 손쉽게 살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모든 재료는 돈의 액수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어쨌거나 몇 시간이 걸리는 공 많이 들어가는 작업들이, 지금 번거롭다고 해도 그 옛날 옛적, 아주 먼 과거만큼이나 어렵지는 않다는 말이다. 옛날에는 비단 틀에 비단을 고정하는 용도로 한지를 쓸 정도였다. 지금? 나? 그럴 한지 있으면 이어 붙여서 그림 그리겠어요.. 지금 사람들? 비단 틀에 총 쏘듯이 타카 박아버리지. 비단에 타카질을 한다고? 우와, 아니, 난 그렇게 안 할래.. 비단에 그렇게 하는 건... 기분이 안 좋아... 난 모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