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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송 Jun 30. 2024

조춘 시리즈 : 작업노트 1

그만두었던 그림, 14년만에 다시 시작하다.






그냥,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그릴 수 있는지.



그게 나 자신이었는지, 내 스승이었는지, 내 재능을 의심하는 내 부모였는지, 내가 그림을 그만두게 만들었던 사람들한테였는지, 앞으로 내 그림을 사주실 분들에게 증빙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는 그림을 그만 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과거에 제일 힘들어하며 진지하게 그렸던 그림. 많은 공부가 되었던 그림. 그리고 역사에 길이 길이 남는 산수화의 시초. 곽희 님의 조춘도. 그림을 14년 만에 다시 그리게 되면서 대체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조춘도를 다시 작업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일단 끄적였다. 그림이라고 하기에 부담스러워 그냥 뭘 끄적이며 그어봤다. 처음엔 A4용지도 너무 크게 느껴졌다. 여기에 대체 뭘 그리지? 뭘 그려야 하지..? 아니, 그보다 더 작은 종이에조차 그려야 할 것이 없었다. 컬러링북을 샀다. 그리고 제일 자신 없는 수채화, 과거에 의미가 없다며 경멸했던 꽃 그림을 그렸다. 그리면서 생각했다. 어렵네. 나는 이걸 왜 그렇게 경멸했을까.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나는 그때도 역시 쥐뿔도 모르는 애였구나.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8절 스케치북이 편안하게 느껴졌고, 4절지가 작게 느껴졌다. 이것들 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그래. 조춘도를, 다시 그려야겠다. 생각하고 30호 작업을 시작했다.


30호는 내가 14년 전에 그림을 완전히 그만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렸던 그림 사이즈다. 그리고 내 졸업 작품 사이즈였다. 나는 졸업 작품으로 100호를 그리지 못했다. 내 그림이 또 찢어져 있을까봐, 열심히 초배지를 몇 겹 붙이고 붙여 판판하게 만들어 놓은 내 소중한 화판이 또 송곳으로 뚫려 있을까 봐. 그려봤자 찢겨 있거나 버려져 있거나 그림이 뚫려있을까봐, 100호를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급식 먹을 때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그림을 그리자. 내가 어디를 가던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사이즈 중에서 제일 컸던 사이즈 30호. 잠자고 일어나면 그림이 없어지거나 찢어져 있을까봐 늘 불안해하며 소중하게 기숙사에 안고 품고 갖고 다니던 나의 아름답고, 또 상처받은 여자. 30호로 그만뒀으니 30호로 다시 시작해봐야겠구나. 그래, 그래서 30호로 정했다. 그리고 14년만에 다시 30호의 조춘도를 그리면서, 다음은 무조건 100호다. 생각했다. 내가 100호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조춘도 작업을 시작하고 50% 정도 스케치를 완성한 후, 옛날 학부 시절 그려서 과제전으로 전시했던 나의 과거 조춘도 모사본을 꺼내봤다. 그 때 당시 학생들 중에서 제일 잘 그렸다, 내 그림 밖에 눈에 안 들어온다, 뭐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었지만, 지금 내 눈엔 "아. 이거 딱 학부생 수준에서 XX 잘 그린 그림이네."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지금부터 그릴 그림의 완성도는 고작 이정도이면 안된다. 나는 대학 갓 졸업한 학부생 수준으로 작가라며 그림 그린다 설치고 싶지 않으니까.









... 그림 그리러 가야지.









< 박 혜 송 >


작가 인스타 @park.haesong

스토리, 하이라이트, 피드에서

작업의 진행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1회 2시간)

경남 진주시 초전동 복합문화공간인

카페 AAM에서 그림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묘 · 오일파스텔 · 아크릴화 · 한국전통회화 · 인상파 스타일 유화 작품 제작이 가능합니다.


명화모작 -> 창작 순으로 진행됩니다.

문의는 DM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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