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송 Jul 09. 2024

조춘 시리즈 : 작업노트 3

그만두었던 그림, 14년만에 다시 시작하다.









아니, 그렇다면. 최소한 그 때 그렸던 그림을 재현하는 것에 멈춰 있을 뿐이라면

도대체 지금 이걸 그리는 의미가 뭔데? 똑같이만 그린다면? 왜? 왜 하는데.


그러니까 나는, 그냥 똑같이만 그리진 않고 싶었다.  순수하게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리면서 이 그림을 외우고 이 그림을 그릴 때의 곽희 님이 되고 싶었다. 곽희 님의 머릿 속에 들어 갔다 나오고 싶었다.






그리고 이 그림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있다. 복잡하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가정이 회복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와장창 무너졌고, 다시 그림을 그리려 이 앞에 섰을 때 내가 느낀 바닥이, 바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처절하게 추락했고 직면했다. 나는 혼자서 말라 비틀어진 모래알들을 가지고 탑을 쌓아 보겠다고 말도 안되는 일들을 벌이고 있었다. 탑이 쌓아질 리  없었다. 무너졌고, 무너진 것을 받아들이는 데 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 받아 들인 지금에도 여전히 혼란스럽고, 많은 것들이 정리되지 않았으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그림을 그리면서 하나하나 해결되기를 바라며, 그림 속에 내  감정들을 필터 없이 그대로 묻혀 보려고 한다. 완성될 쯤에는 더 많은 것들이 정리되어 있을까? 글쎄, 더 망쳐져 있을 수도 있다. 답을 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을 해내야만 한다. 







사건 이후, 그림 앞에 섰다. 이걸 어떻게 한담. 답은 단순했다.  그대로 그린다. 그리고 털어낸다. 내가 이 그림을 시작했을 때의 그 마음 그대로를 담아 화폭에 묻힌다. 가정이 회복될 것이라고 믿으며 가정의 행복을 바랐던 의미를 담아 눈물로 완성시킨다. 그림 속에서 그 가정은 행복할 것이다.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그 단편만 보면 정말로 행복한 순간이었을 테니까. 종국에,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같은 주제와 스케치이지만 어떻게 무슨 색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심각한 그림이 될 수도, 정말 예쁜 그림이 될 수도 있다. 같은 그림인데 종결된 화면에 따라 보는 이가 느끼는 것은 천차만별로 다가올 것이다. 그게 개인의 직접적인 경험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간접적 개인사를 투영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단편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일 수도 있고. 보는 것은 자유다. 해석도 자유.









나는 그저, 그리는 것 뿐이다.

그리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까. 그냥 그림을 붙잡고 그림에 매달리는 것이다.









< 박 혜 송 >


작가 인스타 @park.haesong

스토리, 하이라이트, 피드에서

작업의 진행과정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전 02화 조춘 시리즈 : 작업노트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