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내 컨디션을 체크하기 위해 종종 연락하는 사람들이 무지 많다. 그 중에 한 분은 13년차 갤러리스트인데, 처음엔 나를 아무렇게나 불렀다가 요즘은 가아끔 작가님이라고 해 준다. 그리고 별로 내 그림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 날은 그게 뭐가 됐든 "완성 된 이미지 내놔" 이야기하셨다. 응? 지금 나 쪼우는 거임? 나 원래 여러 개 시작하고 다 같이 끝내야 해서 엄청 오래 걸려요. 라고 말 뱉었다가, 전화 끊고 마음을 먹었다. 음. 진도 제일 빠른 거 부터 끝장 봐야겠네.
조춘 시리즈는 처음부터 10점을 계획했고, 나는 그 중 지옥을 제일 먼저 시작했다. 지옥 같아서. 그리고 여자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지옥을 데려왔다. 근데 오늘 왜 이렇게 지옥에 손 대기가 싫냐. 후..... 하도 작업하던 천국을 가져왔다. 그래, 오늘은 천국이다. 천국 하자. 오늘부터 드디어 10시에서 4시까지 맘껏 작업 할 수 있으니까 신나게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절임 당해 보는 거야. 좋았어! 아주 완벽한 계획이야! 천국 하도 작업을 해두고 잠시 카톡을 켰다.
부고.
붓 던졌다.
아.. 내가 오늘 지옥 말고
천국에 손을 대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전화를 걸었다.
"지금 가면 되나"
"어"
난 메시지를 받고 17분 후
장례식장에 도착해 있었다.
"빨리 왔네" 하기에
"그럼."
그녀도 나도 상여자다.
많은 말은 필요가 없다.
내 요즘 상황은 지옥이야. 고인은 좋은 분이니 천국에 가셨겠지. 그런데 남아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금의 심정은 지옥이다. 애써 버티며 살고자 하셨을텐데, 고인이 되어 버렸으니 천국에서 편히 쉬고 계셔도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해 지옥인가?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옥은 무엇이고 천국은 무엇인가. 지옥에 가면 벌을 받나. 천국에 가면 행복한가.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죄에서 도망다니며 삶을 누리는 게 과연 천국인가, 지옥인가, 죄 받기 싫어 대실한 천국에서 쾌락을 느끼며 현실을 부정하고, 행복이라 합리화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천국을 누리면 안 될 사람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사는 게 지옥이라도 살아있는 것 만으로 천국인 것인가. 왜 살아야 할 사람이 하늘에 가고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있나.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배웅하는 순간에만. 가야 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 가는 게 하늘도 슬프구나. 나의 그녀는 단단한 사람이지만, 대체 얼마나 울었던 건지 봐주기 힘든 얼굴이었다. 화장 안해서 그렇다길래 뻥치지 말라고 했다. 꽉 안아주었고, 그러는 아이가 아닌데 나에게 한참 안겨 있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틀 간 눈물을 참았다. 우산 없이 비를 다 맞으며 손을 흔들었고, 운구차량이 사라지자 맘놓고펑펑 울었다.
오늘은 진짜 그림을 그리려고 했는데. 말만 뻔지르르 한 사람 되겠네. 근데 오늘은 안 되겠다. 못 해. 무슨 그림이야, 지금. 이 날은 올리지 않을 글만 20개 정도를 썼다. 너무 힘들어서 글을 썼다. 목이 갈 정도로 노래를 불렀다. 감정의 세찬 파도를 그대로 느끼고 마구 망가지고 싶었다. 이 날은 커피도 마시지 않았는데 잠도 안 왔다. 그래서 자지 않고 생각을 정리했다. 반성했다. 혼자 글에 토해낸 감정들이불편했다. 감정을 지웠다.
고인은 내가 이렇게 새벽에 잠을 자지 않는 것 보다 잘 자고 일어나 씩씩하게 사는 것을 바라실 거야. 응.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나는 일단은 아파하자. 슬퍼하자. 애도하자. 지치자. 엎어져 있자. 감정을 드러내자. 분출되지 않으면 나중에 어떻게든 곪아 터져버릴 테니. 응.그리고 빠르게 털자. 그리고 일어났다. 3시간 잠 잔 것에 비해 개운했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