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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송 Jul 12. 2024

네 살 아이의 속마음

가정폭력, 바람.. 뻔뻔한 유책과의 이혼 소송일지(3)







상담을 다녀왔다. 선생님. 첫째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아요. 첫째는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 모두 놀라실 정도로 뱃골이 크다. 그 배 안에 다 들어가냐 물을 정도로 3번씩 밥과 간식을 리필해 먹는 아이다. 밥을 성인 1인분마냥 잘 먹는다. 허나.. 남편이 작년 12월에 한국에 돌아온 후 무단 가출을 일삼으니, 아이는 식욕을 잃었다. 상세히 알진 못 하더라도 아빠가 해외에 다녀오기 전과 후, 자신의 우주였던 부모님의 관계가 달라졌으며 앞으로도 이 상황이 계속될 것임을 작은 아이는, 알았다.


아이는 그 때부터 집에서 식욕을 잃었다. 그리고, 4월 14일 이후로는 더 심하게. 나는 보온된 밥을 절대 먹이지 않고 끼니 때마다 새로이 밥을 해 줘 보기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반찬을 구성해보기도 하고, 골고루 먹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아 보기도 했다가, 아이 앞에서 와구와구 식욕이 돋도록 엄청 맛있게 먹는 척 연기를 해보기도 했다. 촉감놀이인지 밥을 먹는 건지 구분이 힘든 둘째를 데리고 첫째와 외식을 해 보기도 하고 예쁜 핑크색 밥그릇에 담아줘보기도 했다.


뭘 하더라도 아이는 밥 앞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늘 잘 먹던 아이가 6개월 째 밥을 남겼다. 밥 양은 당연히 평소보다 줄여서 준다. 그래도 버거운가보다. 잘 먹는 둘째와 비교되어서 그런가, 더 속상하다. 밥을 먹고 나면 맛있는 과자를 줄게 꼬셔 보기도 하고, 또 엄마는 밥 많이 먹었으니까 맛있는 주스 먹어야지~ 하고 약을 올려보기도 했다. 그러든 말든, 40분이 넘게 밥을 우물거린다. 아이는 도대체 왜 이럴까. 이럴 땐 지인이지. 전화를 해서 물어봤다. 언니, 우리 첫째가 밥을 잘 안먹어. 너무 잘 안 먹네. 좀 오래 됐거든..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아이는 지금 "충분히 그럴만 한 상태"라고. 엄마가 아무리 아빠에 대해 말을 하지 않고, 보호하려 노력해도 아이는 다 알 수 밖에 없다고. 아이는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고, 지금 집에는 아빠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성인이라 지금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지만 아이는 이게 무엇인지 인지할 수 조차 없다는 것. 자신도 뭔가 모르겠지만 어쨌든, 힘들다는 것.


그러니까 그, 아이가 힘든 게, 밥으로 그렇게 드러나는 거라고. 내가 아이 밥을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이는 밥에 충분히 자기 나름대로 화를 풀든, 거부를 하든. 지금은 아이가 충분히 힘들 만한 상황인 거라고. 밥 맛이 있을 수가 없다고. 어른도 그렇지 않냐고. 되는 게 없고 힘들면 입맛도 없고, 다 귀찮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러니까 밥도 먹기 싫고 식탁에 앉아 이걸 왜 먹어야 하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느냐고. 그래.. 그렇구나. 우리 아이가 그런 상태인 거구나.


근데, 상간녀도 요즘 입맛이 없는가 보던데? 우리 애는 입맛이 없어서 밥을 우물거리면서 씹어 삼키질 못 하고 있는데 뇌가 없는 남편은 10일만에 애들을 봤는데도 내팽개치고, 상간녀를 위해 16만원짜리 100% 예약제인 강남의 오미카세를 예약해서, 친히 서울까지 올라가 같이 처 먹었다고 한다. 궁금하네. 존나 맛있게 먹었을까. 아, 아쉽다. 내가 그 자리에서 그걸 보고 있었어야 했는데. 스시를 꿀떡 삼키려는 참에 뒷통수를 쳐서 목이 막히게 해주고 된장국을 얼굴에 처발라줬어야 하는데.










나는 12월부터 생활비를 50만원만 보내면서 무단 가출을 일삼는 남편으로 인해.. 어린이집도 가지 않는 아이를 끊임 없이 혼자 돌보며 밥을 해먹이고 타이쿤처럼 집안일과 육아를 쳐내며 주말엔 용돈벌이를 위해 수업까지 하며 지쳐갔지만, 모든 것을 책임질 생각이 없는 남편은 애가 아파서 39도를 넘나들어도 상간녀 하나만 팠다.


첫째가 아파. 둘째가 아파. 첫째 둘째 다 아파. 그러던지 말던지, 미친 듯이 서울에 올라갔다. 신나게 뛰어놀아야 하는 첫째와 손이 많이 가는 돌쟁이, 걸음마도 못하는 둘째. 한 겨울 아빠 없이 집에서만 노는 아이들이 짠해 혼자 애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보기도 했지만, 그럴 때 마다 겨울 날 추위에 제대로 놀지는 못하고 고생만 했다.


봄이 온 김에, 3월 27일부터 4월 5일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콧바람을 쐬어 주려고 친정부모님이 계신 제주도에 다녀왔다. 상간녀랑 후쿠오카 가는 비행기에만 160만원씩 쓰는 그지만, 애들과 함께 내가 제주도에 가는 비용에는 2천원도 보태지 않았다. 나는 혼자 3살, 4살 아이들을 데리고 택시를 이용해 씩씩하게 공항에 갔다. 올 때는 시모가 데리러 왔다. 자기 아들을 옆 좌석에 태워서. 그는 나나, 자기 엄마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일곱 살 바보다. 자위 중독이라 학원 원장실 휴지통에 늘 뭉쳐진 휴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끔찍하게 채워진 것도 나, 아니면 그의 엄마가 치웠으니까.








남편이라는 작자는 10일 만에 아이들을 보는데도 반가워하기는 커녕 애들이랑 나를 집에 던져놓고 도망나갔다. 나는 그대로 아이들 낮잠을 재우며 생각했다. 아.. "뭐지?" 그리고 돌아와서는, 어김 없이 나갈 요량인지 배낭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앞으로 잘 해보자는 의미로 좀 쉬어보라고 10일 씩이나 떨어져 있어 줬으니, 오랜만에 만난 첫 날인데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감정적으로 대하진 말자, 생각하면서 분노를 참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니, 진심이야? 지금 열흘 만에 애들 보는데, 또 나간다고? 음.. 이건 아니지 않아?"




남편은 대답하지 않고, 묘한 표정으로

웃음을 참으면서 배낭을 매고 나갔다.

난 그때 남편 표정이 왜 저런지 몰랐었다.

이제 안다. 내가 속는 게 얼마나 재미났을까






그 작자는 지금 첫째아이 어린이집에 자꾸 찾아간다. 아이가 보고 싶단다. 뭐? 그럴 거면 12월부터 집을 나가지 말았어야지. 귀국 후 둘째 기저귀 한 번이라도 갈았어야지. 양육비로 장난질 말고, 열흘 만에 애들 봤을 때 진짜 보고 싶었던 척이라도 했어야지. 같이 시간을 보냈어야지. 그 전부터 애들 안위 신경쓴 적 없잖아. 갑자기 왜 그래.


아이는 4월 14일, 남편이 내 얼굴에 주먹질 하는 걸 본 이후로 남자를 무서워했다. 그게 성인 남자든, 초등학생이든, 어린이집 5살 오빠든. 6월 27일이 되어서야 아이는 겨우, 엘리베이터에서 큰 남자 아저씨를 보고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날 너무 기뻐서, 주변인들에게 마구 자랑을 했지만 마음 한 켠에 어두운 불이 켜졌다.


이제야 밥도 와구와구 잘 먹고 괜찮아 졌는데. 만나서 애가 힘들면 뒷감당은. 또 내가. 나는 임시보호명령 위반으로 남편을 신고했고, 지장을 찍으며 처벌을 원한다 했다. 첫째는 아빠를 보면 무척이나 반가워 할 텐데 그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려고 하는 모습을 차마 보고 싶지 않은 거라 말씀드렸다. 지금의 이혼 소송에서 아이는 잘못한 것이 단 1도 없다.





4살 아이는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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