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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송 Jul 05. 2024

4월 14일 : 남편이 주먹으로 아내 얼굴을 갈긴 날.

가정폭력, 바람... 유책 배우자와의 소송일지(2)






아이들을 데리고 쉼터에 입소했다. 쉬고 싶었다. 아이들만 돌보고 싶었다. 

지쳤다. 쉼터는 안전했고, 따뜻했다.


친정엄마는 전남편이 될 악마에게 사위님이라 칭하며 만남을 요청하고 그가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갖다 준다고 했다. 나는 정말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엄마의 불필요한 친절에 앓아 누울 것 같았다. 엄마, 그 말고 나나 챙겨. 내 얼굴 안 보여? 여성청소년계 경찰관분이 엄마랑 통화를 했다. 사위랑 만나려는 거, 그러지 마시라고. 하지 마시라고. 그런데도 엄마는 그를 만나 나와의 사이를 봉합하고자 했다. 내가 이렇게 처맞았는데. 엄마는 늘 내 편이 아니었지만 이번에까지 엄마가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엄마와의 만남 이후 뭔가의 자극요소가 생기면  그가 또 폭주해 나를 찾아와 혹시 때릴까 봐, 아이들이 그걸 볼까 봐 무서웠다. 그럴 가능성을 단 0.1%도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그를 만나기로 한 늦은 시각, 굳은 결심을 하고 잠든 아이들을 한 팔에 하나씩 씩씩하게 안아 들고 차로 갔다. 물론 내 등에는 짐들이  꽉 밀도 있게 채워진 40L 여행용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어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무엇보다 직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깜깜한 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안전한 쉼터에,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입소했다.











친정엄마는 쉼터에 입소한 건 기록에 남는다며 카톡으로 폭언을 날리며 날 원망했다. 아, 뭐. 어쩌라고, 그러면 내가 저 사람 가랑이 밑을 기어대면서 처맞고 살라고? 전남편 될 인간이 생활비를 악의적으로 50만 원씩만 지급한 지 반년이 지났다. 심지어 6월에는 30만원. 자기는 새 차 뽑고 상간녀랑 오마카세 먹으러 다니면서 애들 양육비로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이혼 소송 중에 바람도 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재산 한 푼 주지 않고 빈털터리로 내쫓기 위해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활비만 축내는 기생충. 그가 나에게 자주 썼던 말이다. 그럼 생활비를 50만 원만 주지 말던가. 진짜 축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생활비를 써 봤어야 내가 억울하지라도 않지. 고작 50만 원 받으며 기생충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나? 그것도 아파트 관리비와 도시가스비, 어린이집 부대비용과 인터넷과 티브이요금을 납부하고 나면 3만 원이 남는다고 말하니 "알아서 하라"고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도대체 책임을 안 지고 있는 게 뭐냐며, 내가 수업을 못하게 막아버리고 회원들 요구로 개설되는 수업까지 다 환불 시켜버린 주제에.



나는 그가 나에게 또 “생활비나 축내는 기생충” 이라고 말하며 아이들 앞에서 삿대질을 하기에,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사람이 아니며 당신이 지금 누리는 모든 것들은 내가 만들어 준 것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만큼 나는 가치 없는 존재가 아니 말을 했다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양손으로 거실이 다 울릴 만큼 짝! 짝! 짝! 뺨을 3대 맞았다. 말이 짝이지, 퍽 퍽 퍽이다. 귓고막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그는 운동하는 사람이다. 그의 손은 엄청 크고, 나는 머리 귀 턱 뺨을 한 번에 양손으로 압박받으며 어마어마하게 세게 처 맞은 거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정수리를 잡아 아래로 내렸다. 몸이 ㄱ자가 되면 나를 더 이상 때리지 못할 테니까. 일단 그의 행동을 저지하고 이게 무슨 일인지 뇌의 회로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그 상황에 그를 발로 차며 두들겨 패거나, 머리채를 잡고 흔들지 못했다. 거기까지 가지 못했다. 내가 지금 순식간에 당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정리가 안 돼서, 뭐지. 이게 뭐지? 내가 무슨 일을 당한 거지 생각하기 바빴다. 그러자 그는 정수리가 잡혀있는 게 치욕스럽긴 했는지 놓으라 소릴 지르면서 짐승처럼 발광하며 나를 때렸다.









그러면 자,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 보자. 애들 앞에서 들어야 하지 않을 말을 듣고 뺨을 맞았는데, “네,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이렇게 귀싸대기를 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말이 다 옳습니다. 뺨을 맞고 나니 이제야 정신이 듭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네, 저는 50만 원을 축내는 인간말종의 기생충입니다. 앞으로 하늘과 같은 남편님을 성심성의껏 모시며 당신의 노예로 살겠습니다”라고 말을 해야 하나? 아니, 이건 아니잖아.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보자. 그는 놔라, 놔라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으로 내 가슴과 어깨와 몸을 마구 때리고 발로 찼다. 모든 게 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근데, 당신 내가 이 손 놓으면 더 두들겨 팰 거잖아. 놓지 않았다. 완력 차이. 그는 잡지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운동하는 사람. 핸드스탠드를 2시간씩 하는, 체지방 없는 순수 근육으로 만들어진 몸을 가진 사람. 손쉽게, 나를 바닥으로 눕혀 결박하고 주먹으로 얼굴을 갈겼다.



그는 쌍방폭행을 주장했다. 대한민국 법상 뒤로 물러서는 것, 손을 들어 폭행을 막는 것 말고는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 교통사고가 나도 보험비가 오를까봐 병원에 가지 않던 그는, 나에게 맞았다고 주장하기 위해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다니며 진료기록을 2달 째 남기고 있다. 그런데 미안. 나 녹음파일이 있어. 니가 나를 때려놓고 몇 시간 후,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봐라 나도 맞았다" 라고 4월 14일에 니 입으로 말하는 음성 파일이 있어. 배도 까서 보여줬잖아. 아무 상처도 멍도 없었잖아.









응급실에 갔더니 정형외과로 가라 하시기에 그리로 갔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눈알이 튀어 나올 정도로 마구 흥분하시면서 어떻게 여자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가 있냐며 친히 신경외과, 치과, 안과진료를 접수해 주셨다. 아... 종합병원 의사 선생님들이 원래 이렇게 친절했었나. 평소에 늘 다니던 병원이었는데, 사실 환자 대하는 게 일상이니,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면서 송구할 정도로 배려해주시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 씁쓸하게도 이 날 모든 진료진들은 친절도를 전생에서부터 끌어오셨다.


그 날 "나는 어떻게 다치셨어요" 묻는 여러 간호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들께 엉망이 된 얼굴로 "남편한테 맞았어요" 라는 말을 진짜 많이 해야만 했고, 그 말을 하면서 또 그걸 내 귀로 들어야만 했다. 너무 싫었다. 그런 말을 뱉어야만 하는 상황이 엄청나게 거지 같았다. 말을 뱉어야 할 때마다, 그리고 말을 뱉으면서 막을 틈도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뺨을 타고 흘렀다. 많은 간호사 선생님들은 여성이자 한 사람의 아내이기도 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마음 속으로 분노하고 잔잔하게 욕을 하며 나를 도와주시는 게 느껴져서 또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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