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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Oct 18. 2021

요리는 매일 밤 재료 준비가 필수!

4년 내내 룸메이트였던 혜원이는 미국에 살면서도 매일 같이 다른 종류의 한식을 경험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국거리 고기를 해동하고, 수업 가기 전 대파를 썰어 얼려놓는 날 보며 그녀는 매일같이 감탄하곤 했다. 이건 여담이지만, 그녀는 다이어트를 선언한 지 이틀 만에 내가 끓인 소고기 뭇국을 두 그릇이나 해치웠다. 


"나 정말 짜파게티 맛없게 끓이는 사람 처음 봐... 넌 요리에 재능이 없어. 그냥 돈을 많이 벌어서 사 먹자..." 내가 요리를 할 때마다 엄마의 찡그린 표정이 아직도 생생한데, 미국은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나라이기에 내 요리 실력까지 바꿔 놓은 걸까.


한국에 본가에서는 일찍부터 형편없는 요리 실력으로 낙인찍혀 설거지 담당을 자처하고는 했는데, 미국에서는 한식을 먹기 힘들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를 직접 하게 되었다. 새로운 요리를 도전할 때마다 감탄하며 먹어주는 룸메이트 덕인지, 나날이 실력이 발전해 나중에는 제철 봄나물까지 무려 먹는 단계에 이르렀다. 미국에는 특히 찌개나 국물 종류의 요리가 많이 없어서, 집에서 밥을 해 먹을 때는 꼭 빼놓지 않고 찌개 요리를 같이 만들었다. 찌개를 끓일 때는 파, 마늘, 국거리 고기가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매일 아침과 저녁에 재료가 떨어지지 않게 준비를 해놓았다. 


시들시들한 파무침이 되어 돌아오는 날 저녁에도 난 어김없이 파를 썰어 얼려놓았는데, 그런 날 보며 혜원이가 물었다. 


"너 오늘 한숨도 못 잤다면서 그거 진짜 다 준비해 놓고 자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보는 그녀를 보며 내가 답했다. 


"음... 그래도 뭔가 준비해놓고 아침에 딱 끓여 먹으면 든든하잖아"


혜원이는 그런 내 대답이 더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여튼 진짜 신기해... 

그래도 너랑 같이 사는 사람은 맛있는 거 많이 먹어서 좋겠다~"


괜히 할머니 표정으로 흐뭇하게 바라보는 혜원이를 뒤에 대고 내가 대답했다.

"한솥 해놓으면 네가 다 먹을 거잖아..." 혜원이는 내 말에 깔깔 웃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작업을 시작했고, 난 부엌을 다 정리해놓고 나서야 다시 일을 시작했다. 


시금치 된장찌개, 김치찌개, 고구마 맛탕, 각종 나물무침 등등 약 1,440일의 기간 동안 나는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음식을 만들었고, 그 옆에는 그 모든 음식을 감탄하며 먹어준 혜원이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졸업을 했고, 다시 엄마의 집밥을 먹는 생활로 돌아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내 요리실력이 엄지손톱만큼도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끓인 국은 여전히 싱겁고 난 국간장과 진간장도 구별 못 하는 요리 애송이였다. 하나도 늘지 않은 요리실력에 감탄과 경악을 보이는 엄마를 보며 "혜원이는 맛있게 먹었거든!!"이라고 반문해보기도 했지만, 엄마가 간을 맞추는 손놀림 몇 번에 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매일같이 해 먹었던 날들이 무색하게, 난 한국에 와서 요리한 기억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렇게 떠오른 두 가지의 의문: 혜원이는 어떻게 4년 내내 내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걸까? 그리고 나는 왜 멈추지 않고 계속 요리를 만들었던 걸까?


시들시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도, 양파를 삭삭삭 그리고 파를 탁탁탁 썰어 얼리는 일은 나에게 어떤 조용한 의식이었다. 아주 필수적이지만 강요받지 않는 의식.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작업에 치여 달리기 이외에는 좋아하는 요가나 테니스 수업을 받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종종 가던 노래방도 학기 중에는 갈 시간이 없었다. 모순적이게도 그 '해야 하는 일' 조차 '하고 싶은 일'에서 출발했지만, 끝나지 않을 듯 반복되다 보니 엄청난 무게가 되어 날 짓누르곤 했다. 


그런 답답한 하루 가운데 요리 재료를 다듬고, 얼리고, 사용하는 일은 조금 일탈적이면서도 신선한 과정이었다. 아주 조그마한 차이에도 국물의 맛이 다르고, 채소의 신선함에 따라 입안에서 바스러지는 정도가 달랐다. 난 굳은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도 부엌으로 바로 향했고, 재료를 다 다듬고 나서야 표정이 풀어져 다시 단정해지곤 했다. 그렇게 혼자 짧고도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혜원이는 그런 날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았다.


요리하는 동안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던 혜원이는, 내가 음식을 다 만들면 옆에서 우와~, 이야!, 오오와~! 등등 다양한 감탄사를 한 번씩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러면 나는 또 조금 뿌듯해져 웃었다.


미국에서 숨 막히던 하루하루를 보내던 난, 그 순간의 해방감에 기대어 버텼는지도 모른다. 남 보기에 흔하고 반복적인 일이라 해도, 그 순간이 날 숨 쉬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순간이 계속 지속되도록 도와준 혜원이에게 고마운 마음은 더더욱 오래 남을 것이다.


아 참, 혜원이는 원래 샐러드에 드레싱을 뿌려 먹지 않는다. 물론 싱거운 곡을 좋아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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