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정신질환증가와 정신건강 ― 보이지 않는 위기

4부. 다음 20년을 향하는 K-복지의 미래

by 햇살마루

정신질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마주하고 있는 중요한 건강 문제다.

일반적으로 의료 영역에서는 진단체계에서 분류되는 이른바 F코드를 기준으로 정신질환을 설명한다. 그러나 정신건강복지법에서는 망상, 환각, 기분 장애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제약을 경험하는 상태를 정신질환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기능과 사회적 관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사회는 지난 20년 동안 경제적 빈곤에 대응하는 복지제도를 꾸준히 확장해 왔다.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한 공공부조 체계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20년은 경제적 어려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신건강 문제 역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위험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실제로 정신질환은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널리 존재한다. 2021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약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알코올이나 니코틴과 같은 중독 문제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나고, 여성은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정서적 문제를 경험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그 가운데 조현병, 조울증, 반복성 우울증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은 전체 인구의 약 1% 정도로 추정된다. 비율로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일상생활과 사회참여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집단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신질환이 다른 질병과 달리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낙인과 편견 때문에 정신질환을 숨기려 한다. 정신질환이 알려지면 사회적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가족조차도 정신질환을 인정하지 않거나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역사회 역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위험한 존재로 바라보며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결국 정신질환은 개인의 고통을 넘어 가족과 지역사회 전체를 위축시키는 문제로 이어진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정신건강 문제는 공공영역이 개입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 중 하나다. 상담을 권유해도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치료를 받게 하려고 해도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개입이 쉽지 않다. 제도가 있어도 당사자와 가족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행정은 도움을 멈출 수밖에 없다. 정신건강 복지는 단순히 제도를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질환을 방치하면 개인과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 모두에게 더 큰 어려움이 발생한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증상이 악화되고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가족은 돌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관계가 무너지기도 한다. 지역사회에서는 불안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신질환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치료 이후의 삶이다. 중증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들은 장기간 병원이나 시설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지역사회로 나오게 되면 자립생활을 준비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오랫동안 병원이나 시설에서 생활하다 보면 일상적인 생활기술조차 낯설어지기도 한다. 버스를 타는 일이나 세탁기를 사용하는 것 같은 평범한 일상도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거와 소득이라는 기본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취업 역시 쉽지 않다. 정신질환을 경험하는 시기가 청년기의 취업시기와 겹치면서 직업 경험을 충분히 쌓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사회적 편견과 낙인 역시 취업의 문을 좁히는 요인이 된다.


최근 정책 방향은 장기 입원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건강 관리로 이동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향은 분명 필요한 변화다. 그러나 충분한 관리 체계 없이 단순히 지역사회로 나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제 현장에서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관리 없이 생활하게 되면서 주변 주민들이 불안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제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체계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현대사회에서는 신체 건강만큼 정신건강 역시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되었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마음이 힘들 때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를 숨기려 한다.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낯설음과 편견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건강 역시 치료와 상담이 필요한 건강 문제다. 누구나 부담 없이 상담을 받고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 상담센터와 정신건강 서비스 역시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또한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이 병원 치료 이후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게 된다면 최소한 공공 관리 체계 안으로 연결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같은 지역 기반 기관을 통해 퇴원 이후에도 상담과 투약 관리, 사회생활 훈련 등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리 체계가 마련되어야 당사자 역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고, 지역사회 주민들의 불안 역시 줄어들 수 있다.


아울러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입원 절차 역시 현실에 맞게 보완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기준이나 절차 때문에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정신건강 정책의 중요한 과제다.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제도적 지원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신질환을 숨기는 사회는 더 큰 위험을 만들지만, 정신건강을 사회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사회는 개인의 삶을 지키고 공동체의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신질환은 보이지 않는 위기다. 그러나 그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드러내어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 그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작가의 이전글2장. 초고령사회 노인복지―길어진 노후를 준비하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