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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으로 유지하는 결혼 생활

외모도 훌륭한데 풍족한 환경에 살면서 금슬까지 좋아 보이는 부부를 보고 있으면 부럽다가도 설명하기 싫은(!) 복잡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허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반사적으로 내 처지와 비교하면 급 초라해지면서 구질구질함을 면치 못하는 내 결혼 생활에 짜증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루저처럼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부러움’의 절친인 ‘시기’와 ‘미움’을 함께 나눌 만한 은밀한 누군가를 불러내어서는 그 잘난(빠진) 부부의 뒷담화를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야 한다. 알고 보면 저 부부도 말 못 할 문제들이 있다더라고, 마지못해 그냥 참고 사는 거라고. 처음부터 별로였다고.


앞담화든 뒷담화든 타인의 개인사를 마음대로 추측하고 평가하는 일이 나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거니 더 말할 것도 없을 테다. 하지만 이것만큼이나 어리석고 또 위험한 건 이렇게 타인들이 보내는 분별없고 기준 없는 부러움과 기대, 평가를 곧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에 빠져 자신의 결혼 생활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 행복함을 과시하는 것, 그 행복이 내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것. 그러나 자기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의 시선과 평가로 살면서 얻은 행복은 그야말로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기다. 절대 채워질 수 없는 항아리 말이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의 주인공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남들 보기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두 사람은 넌덜머리 나는 이 생활이 괴롭기만 하다. 회사 생활도 짜증이 나는데 감정이 널 뛰는 아내까지 보태서 환장할 것 같지만 그래도 사회적 체면 때문에 뒤로 딴짓이나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프랭크, 배우로서 점점 재능을 잃어가는 것 같아 쪽팔리지만 그렇다고 ‘원 오브 뎀’으로는 살고 싶지는 않아 자신은 물론 애먼 프랭크까지 들들 볶는 에이프릴. 둘은 이 지긋지긋한 일상을 떼어내기 위해서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나는 방법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한 때는 둘 인생의 혁명과도 같았던 곳, 그러나 지금은 떠나지 않으면 내 삶을 테러할지도 모를 위험할 곳.


급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하루라도 빨리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떠나고픈 에이프릴은 프랭크의 로망을 핑계 삼아 파리행을 결심한다. 정확히 설명하면 로망이라 쓰고 현실도피라 읽는다. 둘은 주변 사람들에게 조마간 파리로 떠나 정착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지인들은 두 사람 앞에서는 축하한다고, 부럽다고 하면서도 뒤에서는 질투와 시기를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겉으로 절대 드러내진 않는다. 부러우면 지는 거니까. 에이프릴과 프랭크도 안다. 그들의 진짜 속마음은 진심 어린 걱정이나 축하가 아니라 질투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속물근성은 숨기고 예의로 자신들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 역시 부러워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또 한 번 뿌듯해한다. 역시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야.
그러나 복병이 생기고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부와 명예를 잡을 수 있는 혁명의 기회가 생긴 프랭크는 파리행을 주저하게 되고, 하루라도 빨리 아무도 모르는 파리에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고 싶은 에이프릴은 그런 프랭크를 저주한다.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비열한 인간이라고. 여기에 기름이라도 끼얹듯 옆집에 사는 남자는 정신병원에 다니는 주제에 감히 에이프릴과 프랭크에게 대놓고 ‘허세 쪄는 속물 부부’이라고 비난한다.


새로운 꿈을 위한 파리행이라고? 여기 있기 쪽팔려서 떠나는 주제에 끝까지 잘난 척 하긴.


이보다 더 정확한 지적은 없지만 정신 나간 놈한테 들으니 그나마 헛소리라고 넘겨버릴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에이프릴과 프랭크는 가슴을 후벼 파는 날카로운 정답을 이 정신 나간 놈에게 들으니 더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또 부끄럽다.



함께 하는 일상이 지겹다고 느껴질 때 생활공간을 바꾸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고 사람들은 으레 생각한다. 물론 낯선 공간, 새로운 공간이 설렘과 미래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주는 것은 일부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작 바뀌어야 할 본인들의 마음은 그대로 둔 채 자신이 서 있는 풍경만 바꾼다면 그 약발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곳이 멋진 곳이든 아니든 결국 타인의 시선에 부합하려 애쓰는 생활을 하다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
결혼생활에서 혁명은 생각보다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다. 생활공간을 바꾸거나 상황을 바꾼다고 해서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백 퍼센트 실망한다. 게다가 공간을 바꾸거나 상황을 바꾸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결혼은 내 인생도 되지만 우리 인생도 되기 때문이다.

에이프릴과 프랭크의 비극은 자신의 원하는 것과 타인의 평가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고민하다가 이도 저도 하지 못하고 결국 갈등만 일으키다 둘이 함께 해결할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이른바 ‘독박 쓰는’ 마음으로 다 떠 앉으며 해결하려다 맞이한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모두 독박으로만 해결하는 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가장 피해 보는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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