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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 받은 목돈은 대학 입학 때 받은 등록금355만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돈은 부모님이 고리대부업인 캐피탈을 통해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주신 돈이었다.  그 이후로 박사를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 나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물론 받을 수도 없었겠지만.


대학 4년 내내 나는 '고금리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녔다. 다른 애들 같았으면 진짜 장학금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겠지만 나는 외워서 하는 공부에는 별 취미도 없었고,  불타는 승부욕도 없었기에 장학금은 내가 받을 수 없는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이란 노동보다 고급 취미에 가까웠기에 장학금도 고급취미도 나에게는 그닥 어울리지 않았다.  정당한 돈이란 오로지 일을 하고  대가로 받은 돈이 유일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 장려하는 학자금 대출 덕분에  등록금은 어찌저찌 해결이 되었지만 생활비까지 달라고 손을 벌리기엔 덜 뻔뻔했던 나는 휴학 기간을 포함해서 5년 동안 알바를 쉬지 않았다. 1학년 때 받은 첫 알바비 12만원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하루  6시간씩 주 5회 일해서 받은 첫 임금. 지금 생각해보면 시급 3천원도 안되는 돈이었지만 내 노동을 돈으로 보상해준 첫 임금이었다.

5년 동안 매일 알바를 했던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 부르면 알바 핑계를 대거나 세번 부르면 한번 정도만 나갔다.  술마시고 노는 걸 즐겨하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한번 나가면 일주일 치 생활비를 당겨 쓰는 것이 예사라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다. 내 사정을 아는 친구는 괜찮으니 늦게라도 오라고 했고, 사정을 모르는 친구는 늦으면 택시 타고 오라고 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선심과 내 거절이 몇번 반복되고 나는 언젠가부터 불러도 안나오는 애, 굳이 부르지 않아도 되는 애가 되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 대신 대학원 입학을 결심했다. 외워도 되지 않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도 된다는 말에 대학원을 선택했다.  대학 4년동안 차곡차곡 쌓아둔 학자금 대출이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근로학생이 되면 학비 감면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부모님에게는 입학 통보를 하고 원서를 냈다. 부모님은 내 선택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었다. 돈을 벌어서 집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지만 등록금을 보태주겠다는 말도 하지 않으셨다. 이번에도 무언의 지지가 전부였다. 사실 부모님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나 역시 바라는 것도 없었다. 나와 부모님의 관계는 딱 이만큼이었다.

  석사, 박사 타이틀을 달고서  선배들과 선생님이 소개해주는 일은 마다하지 않고 모두 했다. 덕분에 석박사 6년 동안 학자금 대출금을 차곡차곡 갚았고, 여윳돈이 생기면 모았다가 빚 일부를 갚기도 했다. 내가 돈을 들이밀면 엄마는 미안함과 염치 없는 마음을 "남들은 돈이 있어야 공부를 한다는데 너는 공부를 하니 돈이 생기는구나." 하는 말로 대신했다.

 

부모님은 내가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고 크게 묻지도 않는다. 그 때도 지금도 그렇지만 내 선택에 대해 특별히 관여하지 않는다. 시시콜콜 참견하는 걸 싫어하는 내 성격을 아는 탓도 있겠지만 본인들이 관여하고 참견한들 내가 한 선택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나의 대한 믿음일 수도 있고 다른 부모처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지 못한 미안함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다.  그 마음이 무엇이든 나는 부모님의 무관심에 가까운 지지 덕분에 일찍 독립했다.


주변을 보면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해결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부모님이 있다는 게 부럽고 한편으로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도 부모님에게 저렇게까지 의지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부모님의 간섭을 자식에 대한 내리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니까 당연히 자식에게 그 정도 원조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원조랄 것도, 조언이랄 것도 받은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 지나치게 부모로부터 의존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나는 죽어도 진입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질투라 불러도 좋고 부러움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분명한 건 그 친구들은 나보다 늘 출발이 수월했고 실패의 횟수도 적었다. 부모의 도움으로  늘 한발 앞서 나갔고, 경험과 성공에서 비롯된 조언 덕분에 실패 없는 선택을 했다. 그들이 실수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경고했고, 실패의 위기에 빠지면 재빨리 구해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 거리는 좀체 좁혀지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관계는 소원해졌다. 정확하기 말하면 나는 그들을 피해 다녔다. 그들은 나에게 자격지심 덩어리라고 말했고, 나는 그들에게 부모 등골이나 빼먹는 놈들이라고 뒤에서 비아냥댔다. 둘다 진심이었다.


십 몇년이 지난 후인 지금도 그들이 말했듯이 나는 자격지심 덩어리로 살고 있다.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으면 괜히 불편하고, 이유 없는 호의는 정중히 거절하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신념처럼 여기며 산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부모의 도움을 받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적당히 거리를 둔다. 그 사람이 싫거나 나빠서가 아니라 그저 나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는 게 몸과 마음 모두 편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나는 노동하지 않고 번 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 먼 훗날 부모님에게 물려받을 재산도 없을 것도 분명하다.  때때로 나와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부러운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부러운 마음 그게 전부다.


사회 구조상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없으면 극적인 사건을 제외하고는 부를 창출할 방법이 없는 시대다. 조금은 슬픈 이야기지만 내 아이의 미래도 예전과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상 아이에게 물려준 재산도 돈도 없으니까.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 나의 부모님처럼 무언의 지지밖에 없다는 건 슬프지만 나처럼 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할 수있다는 건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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