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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다는 것


혼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비교 대상도, 비판해주는 사람도 딱히 없어서 내가 만든 결과물이 얼마큼 부족한지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종종 내 멋에 취해 뭐 좀 했다 하면 ‘이 정도면 훌륭하다!’라고 스스로 만족에 빠질 때가 많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비교 대상이 생기면서 또 그 비교 대상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세련됐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실력을 운운하며 우쭐댔던 한 때의 내가 그렇게 쪽팔릴 수가 없다. 아무도 콕 집어 너!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누가 봐도 이 구역 쭈구리가 나다.


이런 느낌이 반복되고, 느낌에 확신을 갖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두려움에 심장은 두근거리고 괴로워 무의식적으로 표정이 굳어진다. 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피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예 그 집단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틈만 나면 빠질 궁리를 하고, 나갈 핑계를 수십 개씩 만들다 보면 진짜 빠져 나오게 된다! 좋게 말하면 손절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그냥 도망치는 거다.  



지금도, 예전에도 나는 도망치는 데 선수다. 도망치느라 중간에 포기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중 가장 아쉬운 걸 꼽자면 하늘을 날아보겠다고 시도했다가 조교 말을 더럽게 못 알아먹어서 포기한 패러글라이딩이 있고, 졸라맨 이후로 진도를 빼지 못해 내 그림은커녕 따라 하라는 것조차 버거워서 그만둔 일러스트 수업이 있다. 그때 나는 이 집단에서 내 존재는 곧 민폐라는 생각과 앉아서 뭉개고 버텨봤자 내 바닥만 확인할 뿐이라는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 핑계를 만들어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다. 시간이 없어서요, 비용이 부담돼서요, 아무래도 저와는 안 맞는 것 같아서요.


실상은 구질구질해질 꼴이 뻔해서, 쪽이 팔려서 도망쳤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자기 주제를  잘 알고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치고 빠지는 순간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 세련된 사람이라 생각했던 나는 센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느끼는 건 진짜 세련된  사람이란 실력도 중요하고 타고난 능력도 중요하지만 나의 부족한 능력을 알면서도, 내가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번 시작한 일은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완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종종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이유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함께 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아는지라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당신이 마음이 그러니 잘 가라고 쿨하게 말하는 것도 별로지만 뻔뻔하게 버텨보라는 말은 더 못 하겠더라. 내가 뭐라고 주제넘게 위로하는 것도 웃기고,  그렇다고 당신은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파이팅 하세요, 와 같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성격에 맞지 않아 그저 침묵으로 그 사람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게 다다. 그 쪽팔림과 쭈구리 고비만 넘기면 뭐라도 남을 텐데요 , 하는 아쉬움을 말해주고 싶지만 그것도 본인이 원치 않는다면 잔소리밖에 되지 않기에 입을 다문다.



능력이나 실력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찾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는 어색하다는 이유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기의 자리를 쉽게 포기하거나 비워 놓는 것을 쉽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습관이 되다 보면 나중에 남는 것은 모두 하다 만 것 투성이며, 나란 사람은 뭐 하든 흐지부지한 사람으로 정의될 것이 분명하다.  세상이 기억하는 사람은 딱 두 종류다. 본 투 비 잘난 사람과 끝을 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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