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친밀했던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다 보면 그 삶의 진심보다 나를 대했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태도는 진심을 읽어내는 가장 중요한 거울이다. 사람은 행동으로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 행동은 곧 태도일 것이고.
-엄지혜, <태도의 말들> 중-
김유정 소설 <봄봄>의 점순이 태도는 83년이 지난 지금도 늘 문제다. 그래서, 여기서 문제!
감자를 건네며 “느 집에 감자 없지?”라는 점순이의 말의 의미는?
①올해 감자 농사가 풍년인데 좀 노놔 줄까?
②감자도 없는 주제에 나대지 마라.
③내가 너의 감자가 되어줄게.
④먹을 때까지 질척거릴 테다!
<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 점순이는 결과적으로 남자 주인공의 마음을 얻기는 했지만 꽤나 돌고 돌았다. 뭐..그런 게 다 남의 사랑이야기 읽는 재미기야 하겠지만 당하는 주인공 입장을 헤아려보면 어지간히 답답하지 싶다. 도대체 쟤는 나를 좋아한다는 건지, 싫어한다는 건지, 감자 자랑을 하고 싶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한 대 츠(!)맞고 싶은 건지.
늘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는 마음이 아니라 결국 태도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한다는 말을 어떠한 태도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수줍은 고백이 될 수도 있고, 변명이 될 수도 있고, 핑계가 될 수도 있다. 남자는 연인에 대한 식어버린 사랑을 바쁘다는 말로 대체하지만 그 말이 핑계임은 그의 애정 없는 태도가 대신 전해준다. 여자는 연인과 한바탕 싸우고 나서 깨끗이 잊겠다고 말하지만 틈만 나면 그때의 일들을 곱씹으며 분노하며 더욱 치밀하게 연인을 탈탈 털 준비를 한다. 이렇게 마음과 태도는 일치할 때만큼이나 별개일 때도 많다.
지나간 나의 연인을 생각해보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지만 그럼에도 지나와 돌이켜보면 내 사랑도 괜찮았다고 느낄 수 있는 건 달달한 표현이나 말보다 상대 연인들이 나에게 보여준 섬세한 태도들일 것이다. 좋아하는 행동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 남들에게 나를 추켜세우는 말을 하기보다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태도, 싸워서라도 서로 맞추기보다 싸우고 또 싸우더라도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고 그것까지 사랑하려는 태도 등.
진심은 아무리, 그리고 어떻게 노력해도 그 모습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진심은 말에서 한번 걸러지고 태도에서 한번 걸러진다. 게다가 말과 태도는 일치할 때도 있지만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아 말과 태도 중 무엇을 더 신뢰하느냐에 따라 진심이 왜곡되기도 하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기분이 태도인 사람,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다른 사람을 옆에 두거나 사랑하기는 어렵다. 처음이야 외모에 끌리고, 다정한 목소리에 반하고, 훌륭한 언변에 반할 수는 있지만 이 조건이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아무리 옳고 바른말, 좋은 말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태도가 별로이면 그 말들은 타인에게 공허함으로 전달될 뿐이다. 반대로 진심에 해당하는 적당한 태도를 장착하지 않았으면서도 내 진심이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금물이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아무리 오래 세월을 함께 지내왔다고 해도 나의 태도가 불량스럽다면 내 진심이 닿기까지는 기약 없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만 한다. 그 사이에 벌어지는 오해와 싸움, 미움, 괴로움 등은 모두 내 몫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내 진심을 몰라준다고 야속해하지 말고 내 태도를 돌아보는 성찰도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착하고 좋은 태도가 아니라 정확하고 분명하게 하되 상대방으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느끼게 만드는 태도를 갖지 않도록 연습하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