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관에서 세련되게 누워서 책을 보고 싶다면
1. 어둡지 않아요, 엄숙하지 않아요.
미술관과 도서관의 개념을 모두 합쳐 놓은 현대어린책미술관은 그림책과 아이들을 키워드로 하고 있는 미술관이자 도서관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칫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공간이 될 수 있는 미술관이나 도서관의 콘셉트와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우선 알록달록한 색감이 아이들의 관심을 끌게 하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놓여 있는 버스가 정체를 궁금하게 합니다. 게다가 전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자연광이 매우 좋습니다.
미술관 중간에 자리 잡은 동그란 계단 위로 올라가면 편하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셔도 되고 작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어도 됩니다. 아늑하면서도 세련된 공간은 아이와 엄마가 모두 만족을 느낄만한 수준입니다. 날씨가 추워서 장시간 외출은 어렵고, 그렇다고 집에 있기엔 너무 답답한 요즘에 아이와 함께 가기에 참 좋은 공간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3살 정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자녀들과 함께 가시면 좋을 듯합니다. 가장 좋은 연령대는 5~8세 정도이지 싶네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오직 이 미술관만을 위해 멀리서 찾아갈 만큼의 규모는 아닙니다. 판교나 분당 근처에 갈 일 있다면 겸사겸사 들러서 구경하기 좋은 곳입니다.
2. 구름 위를 걸으며 구경하는 미술관
미술관은 현대백화점 5층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총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는데요, 1층은 전시관 2층은 도서관 및 체험관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시면 오른쪽에 안내 데스크가 있고 작은 카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간단한 음료수나 커피 정도는 마시면서 전시를 감상하셔도 됩니다. 아, 그리고 여기는 도서관이 아니라 미술관인만큼 입장료가 있습니다. 성인과 아이 상관없이 6000원입니다. 좀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전시 준비 기간 중에 방문하는 바람에 입장료는 내지 않았지만 전시를 보지 못한 건 좀 아쉬웠습니다. 지난 전시 안내를 살펴보니 꽤 괜찮은 전시들이 많았더라고요. 혹 여러분이 방문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전시 안내를 미리 확인하신 후 가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1층 입구 왼쪽에는 세계 여러 나라 그림책을 전시해 놓은 버스가 있습니다. 올라가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귀여운 버스입니다. 그 옆에는 미술관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이 그려 있는 굿즈들을 판매하는 부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창가 쪽에는 잠시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관람 전후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입니다.
입구 오른쪽으로 돌아들어 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이 계단은 아이라면 무조건, 어른들도 충분히 감탄할 만큼 재미있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걸어 올라가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계단을 올라오면 2층 정면에 그림책 서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양쪽 벽면에 서가가 있고 가운데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들고 들어가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딱 좋은 공간입니다.
계단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책상과 의자, 펜, 종이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도 그림책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여기에 전시된 그림책은 기성 작가들의 것이 아니라 현대 그림책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한 친구들의 작품입니다. 그림 낱장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모아서 책처럼 하드커버로 완성해놓으니 남부럽지 않을 훌륭한 그림책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미술관에서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근처 사시는 분들은 활용해보시면 정말 뜻깊겠죠?
3. 숫자로 찾지 않고 키워드로 찾는 그림책
그림책 미술관 서가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도서관이 쓰는 십진분류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신 미술관측에서 정한 81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책을 분류 배열해놓았습니다. 키워드 선택은 그림책 속 주제를 분석하여 도출한 70개의 키워드와 권위 있는 그림책 수상작 키워드 5개, 그리고 해마다 새로 업그레이드된 6개의 키워드를 합쳐 81개로 정했다고 합니다. 키워드를 살펴보면 모험, 미래, 꿈, 호기심, 웃음, 이별, 우정, 친구, 가족, 거짓말 직업, 습관 등등입니다.
사실 보고 싶은 책이 있거나 또는 책 제목을 알고 있으면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찾을 수 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여유를 부리기 위해서 가루경우 읽을만한 책을 찾는다는 건 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합니다. 그렇다고 예쁜 책 표지로 책을 선택하는 것도 좀 우습지요. 하지만 이 도서관에서는 자신이 관심 있는 키워드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가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6세 이후의 아이들은 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훨씬 넓습니다.
사실 일반 공공 도서관의 도서 분류는 분야별/가나다순/작가명 등으로 분류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책 제목이나 작가를 알지 못한 채 흥미 있는 책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을뿐더러 정해진 같은 칸에 전시되어 있는 책들의 경우 내용의 유사성은 있지만 분야의 다양성은 얻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림책미술관의 경우 이런 단점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끌리는 주제어에 맞춰 책을 고르는 재미도 매우 좋습니다.
이 미술관의 또 하나 장점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섹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비교적 신간이 많이 있고 종류도 다양해서 아이가 책을 읽는 동안 엄마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간혹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는데요, 아주 큰 오해입니다. 예를 들어 티브이 프로그램의 연령 등급 표시 중에는 <ALL: 모든 연령 시청>가 있습니다. 주로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에 많이 표시되는데 ALL =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오해받곤 합니다. 하지만 ALL은 어린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모든 연령을 의미합니다. 그림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사실 우리 어른들이야말로 그림책을 읽으면서 사람들과 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되새김해야 하진 않을까요?
이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그림책 중에는 원서도 많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들이나 부모님들이 함께 와도 좋습니다. 혹 영어나 다른 나라 언어를 모른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림책은 그림만 봐도 재밌고 충분히 이해되고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그림책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합니다.
4. 근사한 공간에서 그림과 책을 함께 감상하고 볼 수 있는 곳
미술관이란 공간은 사실 마음먹지 않으면 가기가 어렵습니다. 왠지 차려입어야 할 것 같고, 조용해야 할 것 같고 멋진 감상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문턱이 매우 낮습니다. 백화점을 오가는 길에 들러도 되고, 쉬로 가도 되고 책을 읽으러 가도 됩니다. 떠들지 말라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되고 엄숙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기적으로 전시되는 전시회는 관람자의 품격을 높여주지만 부담을 주지는 않습니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백화점이라는 자본주의 공간과 도서관이란 공공의 공간이 만났을 때 어떠한 모습으로 탄생되는지 그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미술관이자 도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공간이 지역마다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사실 예산과 같은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현대그림책미술관을 설계하신 분은 서울공원을 설계하신 김찬종(건축사무소 더씨스템랩 대표)씨라고 합니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책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면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비록 ‘미술관’의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지향적 도서관의 모습을 제안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