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바튀, <우리는 소중한 친구>
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죠. 실수하면 '어떡하나'와 같은 걱정과 불안, 내가 아닌 것 같은 부끄러움, 낯선 사람들의 눈빛을 생각하면 남 앞에서 자신의 재능을 보여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 걱정이나 두려움 때문에 재능이 있어도 꼭꼭 숨기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재능을 보여줄 기회를 갖지 못하다 보니 자신이 어떤 재능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의외로 많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재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자신감이나 용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이 더 크다 보면 그 기회를 얻기는 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런 기회를 한 번, 두 번 잃어버리게 되면 점점 나는 재능도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 나는 저 친구처럼 당당하지 못할까? 나는 왜 자신감이 부족할까? 왜 사람들은 내 재능을 알아봐 주지 못할까? 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약간은 억울한 마음마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재능이 한 가지씩은 모두 다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그것을 보여줄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것뿐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릴 적에 엄마와 아빠 앞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던 기억이 있나요? 개다리 춤을 추면서 꽥꽥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노래를 불렀던 기억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 같네요.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와 아빠는 배꼽이 빠지게 웃으며 잘한다며 박수를 쳐줍니다. 엄마와 아빠는 여러분이 멋지게 잘해서 그렇게 좋아하신 걸까요? 혹시 그 시절에 찍은 동영상을 다시 본다며 아마 여러분은 당장 숨고 싶을 걸요? 너무나 엉망진창이니까요. 춤도 엉망 노래도 엉망입니다. 그런데 화면 속에서 노래하는 나는 이보다 신날 수 없고, 엄마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며 너무나 행복해합니다. 팔이 부러져라 박수를 치시며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이든 못하는 것이든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는 건 부끄러울 것도, 창피할 것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엄마, 아빠, 가족들은 나의 재능을 비웃거나, 그것밖에 못하냐고 비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재능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 사람의 재능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재능이 빛날 수 있도록 박수를 쳐주고 용기를 주기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불안과 부끄러움 때문에 엄마 아빠에게 부족하지만 여러분의 재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칭찬이나 격려는 받지 못했을 겁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기회를 얻지도 못했겠죠. 반대로 만약 엄마와 아빠가 ‘그게 뭐냐?’ ‘잘해야지. 그 정도로 되겠니?’라는 비난을 했다면 여러분은 아마 좌절할지도 모릅니다. 엄마 아빠조차도 실망하는 내 재능은 매우 하찮은 것에 불과하구나,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부끄러움으로 인해 다시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거라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꽁꽁 숨기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재능이 또 하나 사라지고 마네요. 내가 가진 재능도 중요하지만 타인에 대한 지나친 비난은 그 사람이 다시 설 수 있는 기회를 뺏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회는 타인으로부터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만드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혹 친구가 나의 냉정한 비난으로 인해 자신의 재주를 꽁꽁 숨겨버리고는 다시는 보여주지 않다고 생각해보세요. 나는 친구에게 다른 사람의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뺏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림책 <우리는 소중한 친구>의 팀 아저씨와 벼룩은 자신이 가진 재주를 다른 사람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둘이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죠. 그러나 둘은 조금씩 알게 되고 친구가 되면서 서로에게 재능을 보여주고, 용기를 주고 기회를 주는 사이로 변하게 됩니다. 어떻게 변해가는지 볼까요?
수줍음이 많아 누가 말이라도 걸면 얼굴이 빨개지는 팀 아저씨가 산책길에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벼룩 한 마리가 아저씨의 코 끝에 앉아버렸네요. 잠에 서 깬 팀 아저씨는 코끝에 앉아 있는 벼룩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벼룩에게 물릴까 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반대로 벼룩은 팀 아저씨가 혹시나 자신을 헤칠까 봐 코 끝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아무래도 해결이 안 날 것 같아 결국 둘은 협상을 합니다. 헤치지 않기, 그리고 절대 물지 않기로요.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됩니다. 앗, 그런데 신기하게도 팀 아저씨는 벼룩 앞에서는 얼굴이 빨개지지도 말을 더듬지도 않네요. 벼룩 앞에서는 이미 두려움을 한번 보여주었으니 솔직히 부끄러울 게 없나 봅니다.
배가 고파진 팀 아저씨가 불을 피우고 소시지를 꺼내 굽자 벼룩은 너무 신이 나서 팔짝팔짝 뜁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벼룩의 점프 실력이 보통이 아니네요. 팀 아저씨는 벼룩의 점프 실력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자신의 점프 실력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칭찬을 받아본 적도 없었던 벼룩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준 팀 아저씨가 너무 고마운 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온갖 재주를 다 보여줍니다.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기회가 한 번도 없었던 벼룩이었지만 그 재능을 알아본 팀 아저씨 덕분에 벼룩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찾은 것은 물론 기회를 얻게 된 것이죠. 그런 벼룩을 보면서 팀 아저씨는 벼룩의 재능을 혼자 보기 너무나 아까워 많은 사람들에게 벼룩의 점프 실력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길거리에 자리를 마련하자 벼룩의 점프 실력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기대에 찬 팀 아저씨는 벼룩을 소개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벼룩이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공연을 망칠까 봐 애가 탔지만 팀 아저씨는 벼룩이 숨어버린 이유를 금방 깨달았습니다. 누가 말이라도 걸면 얼굴이 빨개지는 자신이 생각났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벼룩이 공연장으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팀 아저씨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갑자기 팀 아저씨가 무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와, 세상에! 부끄러움과 수줍음 많던 팀 아저씨는 온 데 간 데 없고 새처럼, 깃털처럼 점프하는 멋진 팀 아저씨가 무대를 차지하고 있네요. 그렇게 팀 아저씨는 누구에게도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자신의 재주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박수와 칭찬을 얻은 용기는 덤으로 얻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팀 아저씨는 벼룩에게,
“공연을 하고 났더니, 수줍음이 없어진 것 같아. 신기한 일이야.”
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벼룩은 팀 아저씨에게,
“나는 말이야, 단 한 사람을 위해서만 점프를 할 수 있나 봐.”
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왜 팀 아저씨는 왜 벼룩 대신에 공연을 했을까요? 그리고 벼룩은 왜 팀 아저씨게만 부끄러움이나 수줍음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바로 팀 아저씨는 벼룩의 훌륭한 재능을 발견하고 알아봐 주는 마음을 가졌고, 벼룩은 팀 아저씨에게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끄러움과 불안을 느낍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잘 난 사람도 이런 감정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부끄러움이나 불안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리는가에 따라 어떤 사람은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소심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은 냉정한 사실을 말하자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능만큼이나 용기를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냐면 기회는 용기 있는 사람이 가져가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지 않습니다. 기회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혹 나의 재능에 대해 자신감이 없거나 재능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두렵다고 해서 숨거나 불안해하면 나는 영원히 기회를 만들지 못할 수 도 있습니다.
반대로 내가 다른 친구들의 재능에 대해서 쉽게 비난하거나 못한다고 놀리면 그 친구는 나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부끄러움을 느껴 다시는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엉망진창의 춤을 보면서도 즐거워하고 손뼉 쳐주는 엄마와 아빠를 생각해보세요. 나를 춤추게 만드는 건 평가가 아니라 칭찬과 격려 그리고 용기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가진 재능을 알아봐 주는 것, 그리고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기술입니다.
혹 나의 절친이 용기가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여러분이 꼭 먼저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친구가 실수를 해도 부끄러워해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어느 순간 진지하게 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혹시나 친구가 실패를 하거나 포기하게 되면 실망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안아주세요. 더 잘할 수 있다는 격려도 좋지만, 그것보다 지금의 너도 충분히 멋졌다고, 혹시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고 말해주세요. 둘이 함께 하면 없던 자신감도 생기게 됩니다. 그게 우정의 힘이지요.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잘하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봐 주기, 사랑하는 사람이 부끄러워하면 제일 먼저 안아주기면 충분합니다. 부끄러움도 수줍음도 창피함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나의 재능을 기꺼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의 재능은 더 빛이 나게 마련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자신감을 갖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 실패는 다음 ‘퀘스트’를 임무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또 다른 ‘퀘스트’ 일뿐이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