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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짝과 허세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영화, <내사랑>

(글에는 영화에 대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드에게 불편한 몸보다 더 큰 고통은 그녀를 ‘짐짝’으로만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이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의 짐짝’이 아님을 증명할 방법은 독립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그녀는 동네 상점에 가정부를 구하는 광고를 내러 온 에버렛을 만나게 된다. 모드는 가정부 일이 자신이 독립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그 길로 에버렛을 찾아간다. 그러나 에버렛은 모드의 절룩거리는 다리가 신경 쓰인다. 그가 필요한 건 돌봄이 필요한 여자가 아니라 가정부다. 그것도 자신이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가정부 말이다. 그런 에버렛에게 모드는 밑도 끝도 없이 나는 당신에게 ‘짐짝’이 아닌 ‘필요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모드의 근거 없는 확신은 과한 것이 분명했다. 구석에서 일이나 할 것이지 쓸데없이 자꾸만 에버렛의 일상에 훅 치고 들어온다. 게다가 허락 없이 자기 물건에 손을 대고 관심을 보이며, 쓸데없이 예쁘게 집을 꾸미는 등 가정부로 고용된 주제에 자꾸만 선을 넘는다. ‘병신’ 같은 몸으로 애라도 쓰니 그냥 봐주긴 하지만 자신의 공간이 좁아지는 것 같아 에버렛은 예민해진다. 그러나 사실 더 거슬리는 건 자신의 마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리고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러나 그것이 연민인지 사랑인지 내가 알게 뭔가. 먹고사는 데 필요 없는 감정은 그에게 사치일 뿐이다.       

에버렛의 이런 불편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드는 “당신은 내가 필요해요.”,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하지만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네가 뭔데 그런 말을 해? 지 주제도 모르는 여자 같으니라고!’라고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에버렛의 동공은 흔들리고, 몸은 굳어버린다. 여태껏 살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 테다. 관심, 사랑, 애정 같은 건 지금껏 인생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도 없거니와, 앞으로 살면서 없어도 되는 쓸모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그런데 자기 주제 파악도 못하는 모질이같은 여자에게 이런 사치스러운 말을 들게 되다니. 그러나 정말로 자기 주제를 모르는 건 에버렛 자신이다. 자신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지금까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은 안다. 관심, 사랑, 애정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도록 설레게 하는지, 그리고 그 마음을 받아주는 것이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러나 에버렛은 오그라드는 손발이 부끄럽고 싫으면서도 그렇게 사랑받고 있고, 또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주제’를 알아가게 된다.      

내가 가진 조건이 내세울 것 없거나 별 볼일 없다고 느껴지면 으레 사람들은 더 움츠러들고 스스로 벽을 만들게 된다. 내가 가진 조건이 곧 ‘나’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 조건은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크기도 사랑의 범위도 정해준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이 그렇다. 어쩌면 고효율 시대에 누군가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비효율의 끝판일 수도 있다.  왜 연애를 안 하느냐 물어보면 귀찮고, 돈도 많이 들고, 쓸모없고 비효율적인 것이라 별로라고 말한다. 사실 그렇다. 사랑을 하게 되면 감정 낭비, 돈 낭비, 시간 낭비는 필수다. 그러나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느껴보지 못한 인생을 잘 된 인생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지금 사랑에 빠져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자신의 인생이 잘못된 인생이라고 생각할 사람 역시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진심이 아니라 허세고 센 척에 불과하다.  

에버렛은 강한 척, 센 척에 익숙한 사람이다. 누가 자신의 마음을 가져갈까 봐, 혹시라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이 견고한 외로움이 파괴될까 봐 죽을힘을 다해 마음을 뺏기지 않고 센 척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센 척하는 사람은 센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모드는 불편한 몸, 가난, 외로움을 모두 가졌지만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진짜 센 사람이다. 결국 에버렛은 루저가 됐다. 그것도 사랑받고, 또 사랑이 뭔지 알게 되어 눈물도 흘리고 가슴도 아파하는 반푼이 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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