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육이 온라인 콘텐츠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이유
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격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곳은 아마도 교육 관련 기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래 없는 개학 연기로 인해 학사 일정은 꼬일 대로 꼬였고, 특히 입시를 코앞에 둔 당사자들과 그 부모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코로나 19 사태가 종료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기에 교육부는 온라인 개학을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3월 31일 브리핑을 통해 입시와 직결된 고3 수업을 시작으로 4월 9일부터 온라인 개학을 순차적으로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집단 감염 예방과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개학을 미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긴 하지만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방식인 온라인 개학 시스템에 대해서 교사는 물론 학부모 학생들 모두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준비 없이 급작스럽게 시행되는 탓에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기술적인 문제와 온라인 수업의 효과와 한계를 두고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온라인 강의는 사실 전혀 낯설지 않은 방식이다. 온라인 강의를 접할 수 있는 대표적 것으로는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를 들 수 있다. ‘유 선생’이란 별명처럼 유튜브 안에서 교육 콘텐츠는 전체 콘텐츠 비율 중 반 이상을 차지하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또한 교육 서비스 기업 역시 온라인 학습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온라인 교육 콘텐츠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자기 주도 학습’이 가장 이상적인 학습 방법이라는 전제 아래 이를 최적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온라인 수업이라는 교육 서비스 기업들의 광고는 학부모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공략하면서 온라인 교육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는 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 교육/학습 방식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머지않아 학교도 필요 없고 교사도 필요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다. 비용, 접근성 측면에서 온라인 강의가 대면 수업의 부담을 덜어준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바이며 이런 강의도 있나 싶을 만큼 콘텐츠 역시 다양하다. 앞으로 온라인 교육/학습은 기술적 진보와 함께 더 빨리 그리고 더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우리의 지식과 교양을 담당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면 수업은 사라질 과거형이 될 것이며, 온라인 수업이 대면 수업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온라인 학습과 학교라는 공간을 통한 전통적인 대면 학습 방식은 지적 토대를 형성하고 지식을 확장하는 방식에 있어 그 층위가 다르기에 시대에 따라 선호도를 논할 수는 있어도 가치 측면에서 우위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배경에는 학교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학교는 정보 전달과 습득만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연습을 하며 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을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교수자, 학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그를 토대로 자기만의 지식을 재생산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학교는 개인의 인성과 진리 함양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윤리적, 도덕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는 효율성을 명분으로 학교가 다른 무엇과도 대체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논리가 적용되면서, 이윤 창출이 존재를 위한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면서 언제부턴가 학교가 본래적 기능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중심에 대학이 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국내 대부분의 대학은 대면 개강을 4월(또는 5월) 이후로 미루었지만 대신 온라인 수업을 실시하여 실질적으로는 새 학기를 시작했다. 교수자와 학교의 기술적 조건과 상황이 조금씩 다른 까닭에 동영상 강의, 실시간 화상 강의(ZOOM) 등 다양한 플랫폼을 사용하며 기를 쓰며 “꾸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도입된 탓에 시행착오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E-러닝(Electronic-Learning), U-러닝(Ubiquitous-learning) 등과 같은 온라인 수업은 갑자기 도입된 시스템이 아니다. 이미 2000년도 이전부터 일부 대학에서는 ‘사이버 대학’이란 이름으로 각 대학에서 교양 과목에 온라인 수업 방식을 도입했다. 당시만 해도 꽤 파격적인 형식이었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 대면 수업보다 학습 부담이 적고 시험이 쉽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학교 입장에서도 온라인 수업은 효율적인 수익 창출원 중 하나였다. 수업 공간이 필요 없는 까닭에 수강 인원을 제한할 필요가 없었으며, 수강 인원이 몇 명이든 강사는 한 명이면 충분했다. 즉 온라인 수업은 인건비 절약에 최적화된 방식이었다. 그러나 대학은 소수가 듣는 수업이라고 해서 등록금을 더 내고 수업을 듣지 않듯이, 반대로 수백 명이 듣는다고 해서 등록금을 깎아주지 않는다. 기술이 발전과 더불어 온라인 수업이 적극적으로 활성화되면서 대학의 인건비 지출은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논리일 텐데 이상하게 대학 등록금은 해마다 오른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고 쳐도 대학 등록금의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을 훨씬 웃돈다. 반대로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라면 개인 시간의 확대 정도다. 그러나 맘대로 수업을 들 수 있다는 편리함 대신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한 학기에 담당 수업 교수님의 얼굴을 시험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혜택은 학생 입장에서 결코 좋아할 혜택은 아니다. 게다가 부실한 콘텐츠, 교수들의 강의 재탕, 학생들의 불성실한 수업 참여, 부정행위 등 여러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런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온라인 수업은 예전보다 훨씬 폭넓게 확대되어 대부분의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물론 기술적 진보로 인해 여러 문제점이 보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수업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문제점, 이를테면 지루한 강의 방식, 교수-학생 간 소통 부재, 학생들의 불성실한 학습 태도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학의 강사 및 교수들이 온라인 강의를 두고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것 중 하나는 비대면(온라인, 또는 화상) 수업은 대면 수업보다 훨씬 힘들고 또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학 수업은 외우고 밑줄 긋고 채점하는 방식의 수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을 마주치고 질문하고 대답하며, 토론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것이 진정한 대학 수업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통 사람들의 전쟁』의 저자 앤드류 양은 온라인 수업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는 쉬운 접근성과 저렴한 교재, 첨단 기술의 장점 등을 두루 가진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똑똑해질 것이고 미래는 앞당겨질 것이라는 주장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온라인 수업 과정을 완전하게 이수하는 학생은 매우 드물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과제를 한다고 해도 사실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마트 기기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으로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지만 정말로 사람들이 똑똑해졌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온라인 교육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면 강의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질 높은 온라인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본래적 존재의 의미와 취지를 대학 스스로 포기하거나 변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학생은 대학의 고객도 아니고, 대학 공동체의 구성원도 아니며, 오로지 대학의 학생이라는 점을 잊지 말 것을 주장한다.
대학은 최고의 교육 기관인 동시에 이익을 창출하는 영리 기업이다. 학생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와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 운영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장 논리를 대의적 명분으로 삼아 진리탐구와 사회 기여라는 ‘큰 배움’의 본분은 제쳐 두고 노골적으로 자본의 논리를 도덕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학령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어지자 대학은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기업보다 시장 논리와 변화에 발 벗고 나서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수익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든든한 재단을 둔 대학이라고 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립대학이든 사립대학이든 시장의 흐름을 거부하거나 초월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지 싶다.
얼마 전에 부산의 모 대학 교수가 ‘아프리카 tv’라는 개인 실시간 인터넷 방송 플랫폼을 통해 강의를 진행하다가 웃지 못할 일을 겪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수업 분위기를 위해 음악을 틀어놓았는데 한 학생이 그에 대한 감사 표시로 ‘별풍선’을 쏴주었다는 것이다.(국민일보 2020년 3월 19일 자, “BJ가 된 교수님, 강의실이 된 카페, ‘랜선 개강’이 바꾼 대학가 풍경”) 물론 분위기 전환을 위한 학생의 위트 있는 행동으로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생경한 풍경이 머지않아 익숙한 풍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좀 두려운 생각도 든다. 교수와 학생이 주고받는 것이 지식과 질문이 아니라 관심과 그에 대한 평가라면, 별풍선의 개수가 강사의 다음 학기 강의수를 결정한다면 어떤 강사가 관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다짐할 수 있을까.
온라인 수업이 적합한 것이 있고 대면 수업이 적합한 것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에서는 대면 수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수업은 단지 지적 교양을 쌓기 위함이나 보편적 지식을 수집하고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큰 배움’을 위해 탐구하고 비판적 사고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지식을 재생산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간단히 말하면 밑줄을 긋고 외워 “백 점”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큰 학문’이 대학에서 가능하려면 직접 교수를 만나 질문하고 대답하고, 또 학인들과 만나 토론하고 반성하는 과정의 반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온라인 수업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현실적인 한계와 효율성을 이유로 축소되거나 간략화된다.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학 온라인 강의의 문제점은 대면 수업보다 질적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 대면 강의가 주는 만족감을 온라인 강의에서는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학은 온라인 수업 방식을 교육의 목적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교육의 수단으로 삼을 것인지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앞으로 대학이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생존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이든 각 대학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온라인 수업이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순진한 핑계는 절대로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지식의 시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하고 이 호기심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질문하고 대답하고 또다시 생각하고 질문한다. 이 모든 것은 선생과 학생이 서로의 표정을 보고 입을 보고 몸을 보고 말하고 느끼면서 학습되는 동시에 체화된다. 지식은 머리로만 익히는 아니라 교수자와 학습자가 함께 머리와 몸으로 익혀야 한다. 대학 강의의 목적이 온라인 백과사전 수준이라면, 학생이 별풍선을 보내고 그것에 부흥하여 더 열심히 강의한다고 생각해보면, 이건 고등 교육 기관이 아니라 끔찍한 온라인 시장판에 불과하지 않을까.
*제목은 앤드류 양의 『보통 사람들의 전쟁』본문 중에 나온 소제목을 변용했습니다.
*이 글은 <르몽드-문화톡톡>4월 6일자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