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서, 그 이전 이야기
사람들의 발걸음은 늘 어딘가로 향해있다.
등교를 위해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 맛있는 끼니를 준비하기 위해 마트로 향하는 주부들, 출근을 위해 운전대를 잡고 회사로 향하는 직장인들,
그들에게는 목적지가 있다.
나도 그랬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회사 출근 버스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탑승장소로 이동했고,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동시에 난 또 그렇지 못했다.
끼니가 되면 주어진 반찬 중에서 골라서 밥을 챙겨 먹었을 뿐 특별한 뭔가를 먹고 싶어서 맛집을 간다거나 레시피를 연구하여 해먹은 적은 별로 없다. 단순히 요리나 음식에 관심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이런 욕망도 기대도 없는 태도는 생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같은 회사를 5년 동안 다닌 것도 그동안 걸어온 길이 이거니까 이것 말고 뭘 할 수 있겠냐고 스스로 높은 벽을 치고 그 울타리 밖을 탐험할 생각은 한 번도 하지를 않았다.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둘러볼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갔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또는 경험을 쌓고 몸 값을 올려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라던지, 하다못해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안정감에 만족을 했더라면 난 회사를 때려치우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생활 자체가 싫었다거나 이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었다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워라밸도 연봉도 복지도 좋았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난 이 회사에서 딱히 이루고 싶은 것도 얻고 싶은 것도 만족감도 없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회사생활을 열심히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난 매일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것에만 멈춰있었고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그렇게 정체되어 있었다. 열정은 바닥난 지 오래됐고 난 단지 내 시간과 노동의 대가로 월급을 맞바꾸고 있었다. 단지 그래 왔을 뿐이다. 이대로 계속 가면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물 보듯 뻔했다. 회사 내부에는 눈에 빛이 없고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냥 그 위치만 지키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 높은 위치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부장님, 이사님을 보면서도 내 마음속에는 딱히 동경의 감정이 차오르진 않았다. 그들은 분명 엄청난 노력을 통해 그 위치까지 갔을 테고 분명 빛나는 존재들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내게 있었고 여기에는 내가 원하는 것도 되고 싶은 모습도 없었다.
요즘의 인생은 길다. 급작스러운 사고나 건강에 큰 문제없이 운 좋게 정년까지 버텨 40, 50 된 다해도 그다음 남은 인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젊은 시절에 비해 더 성치 않은 몸으로 그때 가서 또 방황을 할 순 없다. 그리고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내려놔야 할 또는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점점 커진다. 사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와 같은 인생고민을 대학교 시절부터 해왔다. 하지만 그때는 생각만 고민만 했을 뿐 그 답을 찾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확신한다. 나라는 사람에게는 이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지금 여기서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또 똑같은 문제에서 난 방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어딘가 엉켜버려 돌아가지 않는 카세트테이프처럼 말이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왜 이 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인정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난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끼니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면 꿈이고 목표고 따질 것도 없이 일단 돈을 벌 수 있는 뭐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이 맞다. 의식주는 생존을 위한 필 수 요건이니까.
그렇다고 나도 그렇게 여유가 넘치는 것은 아니다. 난 흙수저 중에서도 굳이 따지자면 수저 모양을 한 흙덩어리에 불과하다. 단단하지도 않아 언제 부서진 대도 놀랍지 않은 그런 불안정한 흙덩어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고민과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 덕분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야지만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르침을 난 잘 따라왔다. 명문대에 갔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생각 없이 달려온 5년간의 회사생활이지만 이 시간 동안 통장에 쌓인, 약 3년은 수입 없이도 당분간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자금은 모았다. 대기업이라는 환경 속에서 회사가 어떻게 체계적으로 돌아가는지, 동료들과의 인관관계, 업무처리를 위한 협업 등 몸소 체험해보지 않고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하지만 이 경험만 얻기에는 5년이란 시간은 이미 너무나 길었고, 지금까지 해온 일을 내 커리어로 계속 쌓아 갈 생각이 없는 이상 더 이상 이곳에 머무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백수가 되는 선택은 사실 엄청 큰 리스크를 수반한다. 내가 다시 안정적 수입이 생기기까지 또는 어느 정도 부를 이루기 전에 부모님이나 나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목돈을 써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더 이상의 여유는 없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3년이란 시간에 꼭 뭔가를 이루어 낼 것이라는 보장 또한 없다. 또 그 시간 동안 그럴듯한 성과가 없다면 경력단절에 시간만 낭비했다는 마이너 한 태그가 추가되어 재취직에도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들 얘기하듯이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 후 하고 싶은 일을 취미나 부업으로 시작하고 그게 어느 정도 안정되면 그때 그만두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조금 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퇴사를 결정할 당시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 외에도 이미 마음과 정신이 많이 망가져있었다. 나는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는 것부터가 급선무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난 퇴사를 했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변화와 발전 또한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선택을 했다면 이제는 최선을 다 하는 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