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서, 두 번째 조각
나는 완벽주의자다.
그리고 세상은 나에게 말한다.
성공하려면 완벽주의부터 내려놓으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자신을 완벽주의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에게 묻고 싶다.
완벽주의, 버려지나요?
더 열심히 살자!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늘 계획을 세운다.
시험일정에 맞춰 준비를 한다거나 회사 일 등 외부요인으로 하는 일 말고
운동이라던지 책 읽기 등 스스로의 의지로 하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완벽하게 계획을 수행한 날에는 그 무엇보다 보람을 느낀다.
계획을 세운 하루 이틀은 계획대로 잘 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의지는 생각보다 약해 얼마 가지 못하고 틀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아침에 계획한 시간에 못 일어났다거나, "해야" 하지만 "하기 싫어서" 딴짓을 했다거나.
그렇게 계획이 틀어지면 그다음 일정들은 하기 싫어진다. 그 하루는 이미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이런 "실패"한 날들이 연속되기 시작하면 나는 어느새 투지를 잃고 되는대로 살기 시작한다.
이미 이 프로젝트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잠깐, 완벽주의에 대한 오해를 풀자면
스스로에 대한 요구는 높지만 타인에게 똑같은 수준의 뭔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외부요인은 예기치 못한 변수이므로 이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는 건 문제가 안된다.
스스로의 의지 부족이나 할 수 있었는데 못한 상황이라면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뭔가를 꾸준히 하기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꾸준히 해왔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 자신은 그게 꾸준한 게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올해 들어 책도 어느새 10권인가 읽었다.
다만 그 과정이 매일 책 1시간 읽기를 계획하고 실패하고 또 한동안 지나서 계획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꾸준히 한 게 아닌 것이었다.
참 이상한 고집이다.
그럼에도 완벽주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절대 해낼 수 없는 터무니없는 계획이 아니니까.
이대로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과를 생각하면 포기할 확률인 99%가 아닌 1%의 희망을 선택하게 된다.
그래서 룰을 바꾸었다.
완벽주의를 버리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기 위해.
완벽주의인 자신도, 의지가 약한 자신도 둘 다를 받아들였다.
똑같이 계획을 세운다. 달라진 점이라면,
작심삼일과 "실패"에 대한 대비책을 함께 계획에 넣어 "실패"의 가능성을 없애는(줄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
예전의 나라면 이틀에 한편을 꼭 써내자는 계획을 세웠을 경우, 처음에는 잘 진행해오다가 계획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아마도 그 원칙은 무효가 되면서 생각나면 쓰고 아니면 말고로 "전락"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이틀에 한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는 쉬는 날이다. (진짜 쉰다기보다는 완충제 역할이다). 생각보다 글이 잘 써져서 추가로 발행한 글은 덤이고 플러스알파가 된다. 반대로 생각처럼 잘 안 되는 날은 쉬는 날을 활용해 보충한다. 삼일까지도 (현재의 내 수준에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완성도 있는 글을 작성하지 못했을 경우, 그다음 삼일에 두 편을 작성하기로 한다.
계획 안의 일이므로 "실패"로 볼 수 없다. 그렇게 꾸준히 이어간다.
그게 결국 완벽주의를 버린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한텐 다르다.
나의 완벽주의는 내가 계획한 대로 실행했는지가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가끔 종이 한 장의 앞뒷면 차이로 크게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