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이야기 4. 해운대 신시가지(그린시티)와 한마음스포츠센터
공직을 내려놓은 뒤, 나는 삶의 거처를 옮겼다.그동안 출퇴근의 편의를 위해 시청 가까이에 머물렀으나, 이제는 이유가 사라졌다. 은퇴 후 살고 싶은 곳으로 미리 점찍어 두었던 자리, 그리고 여러 이들의 권유까지 더해져 해운대 신시가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내 인생의 또 다른 무대를 열어젖히는 일이었다.
- 둥근 땅 위에 그려진 도시
1990년대 초, 정부는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부산 역시 이에 발맞춰 해운대 신시가지를 비롯한 여러 지구에서 40여만 호 건립을 추진했다. 그 가운데 해운대 신시가지는 도시 설계자들의 혜안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었다.
이곳은 둥근 땅의 형상을 따라 도시를 세웠다. 바깥 원에는 주거지가, 안쪽 원에는 상가와 병원이 자리했고, 집과 집 사이에는 작은 공원이 쉼터처럼 배치되었다. 아이들이 오가는 길에는 건널목을 줄였고, 초·중·고등학교를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두어 안전을 배려했다. 도로는 차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해 보도를 넉넉히 확보했고, 사계절의 빛깔을 품은 가로수는 도시의 호흡이 되었다.
아파트와 상가의 높이는 서로 다투지 않고 어울렸다. 25층 남짓의 아파트와 48미터 제한을 둔 상가가 만들어낸 스카이라인은 정돈되고도 안정적이다. 외곽순환도로는 차량을 바깥으로 밀어내고, 단지 안은 보행자의 발걸음이 일상처럼 이어졌다. 도시철도와 전철이 연결되며, 이곳은 ‘걷는 삶’이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 그린시티의 오늘과 내일
전임 해운대구청장은 이곳을 ‘해운대그린시티’라는 이름을 붙이고 재정비 구상 용역까지 추진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아직 주민에게 공개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정부는 ‘노후 계획도시 정비특별법’을 추진하면서 그린시티 내 선도지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과거 설계자들보다 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다. 부산시, 해운대구, 그리고 주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다시금 대한민국 최고의 주거단지를 설계해야 한다. 그 혁신의 물결은 반드시 이곳, 해운대 그린시티에도 닿아야 한다.
- 조명이 꺼지던 순간, 흘러내린 눈물
신시가지 한편에는 ‘한마음스포츠센터’가 있다.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이어 열린 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FG:FESPIC Games)의 후속 사업으로 세워진 공간이다.
FG 대회 준비는 쉽지 않았다. 경기장과 선수촌, 장애인 이동시설, 관중 확보까지 어느 것 하나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VIP 참석이 불투명해지던 시기, 청와대 복지수석실에서 긴급 보고가 열렸다. 부산시와 조직위원회가 준비 상황을 보고했고,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다음 날부터 청와대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 나는 복지수석실에 겁 없이 말했었고 중앙 권력의 무게와 속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대회가 끝난 뒤, 경기장의 조명이 하나둘 꺼지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관중이 빠져나간 텅 빈 운동장에 서서 지난 시간을 떠올리다 보니 눈물이 흘렀다.
그때 아시아 장애인체육의 어머니이자 본 대회의 창시자이신 황연대 회장님이 다가와 “수고했네”라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 포옹은 내 삶에서 가장 깊은 위로이자 기억으로 남았다.
- FG 대회 유산을 남기다.
그 대회를 준비하면서 부산은 처음으로 장애인 저상버스를 도입했고, 해운대 우동 해림초등학교 앞 육교에 엘리베이터를 시범 설치했다. 사직경기장 건물에는 구멍을 뚫어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넣었다.
행정에도 다목적이라는 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경우일 것이다. 장애인뿐 아니라 학생, 노약자, 모든 시민에게 길을 열어준 일이었으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숙제가 있었다. 대회의 유산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당시 부산에는 장애인 스포츠 시설이 곰두리센터 단 하나였다. 그래서 새로운 센터 건립을 구상했고, 논의 끝에 지금의 좌동 신시가지 부지를 선택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FG 대회의 결산 자금까지 투입해 세워진 ‘한마음스포츠센터’, 이 건물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다. 대회의 땀과 눈물, 그리고 시민의 성원이 벽돌이 되어 쌓인, 부산 공동체의 자산이다.
앞으로도 이곳이 장애인에게는 희망의 무대가 되고, 지역 주민에게는 삶의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 그럴 때 비로소 해운대의 이야기는 또 다른 장을 열며, 계속 쓰여 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