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광효 Nov 01. 2022

43.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해운대 주간 일기 43 –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지난 금요일 밤, 노트북을 열고 작업을 하는 중 상상할 수 없는 뉴스가 올라왔다. 이태원에서 압사사고로 수십 명이 사망했다는 기사다. 가짜 뉴스처럼 보였다. 설마 이런 사고가 났을까.


루마니아 배구리그에서 활약하는 이다영 선수의 경기를 유투버에서 보고 있는 중에 속보가 계속 뜨고 사망자는 늘어만 갔다. 그래도 현장 상황을 모르니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의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31일 오후 11시 현재 155명 사망, 중상 30명이 발생했다.


나는 공무원을 하는 동안에 크고 작은 재난을 경험했다.

도시철도 연산역에서 주로 노인들이 탄 에스컬레이터의 순간 정지로 4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었고, 해운대 골든스위트 38층 고층건물의 화재가 있었고, 새해 년 초에 기장 삼각산에서 대형 산불이 생겨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대형건물 공사장의 추락 사망사고, 집중폭우로 인한 침수 및 단독주택 붕괴사고 등이 기억에 남아있다.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 시에는 부산역 광장 총괄 책임자를 맡았었다.

엄청난 사람과 그들이 내뿜는 응원 열기는 사람을 압도했다. 축구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고, 함성이 터질 때마다 질서가 유지되는지에 온 신경을 썼다. 그 뒤로 사람이 운집하는 행사에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2005년 APEC 정상회담이 부산에서 열렸고, 이를 기념하여 광안리에서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부산불꽃축제가 있었다. 약 10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 당시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거라 예상 못했다. 부산 도심에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투자설명회에 온 외국인들이 이 축제를 보고 난 후 서면 롯데호텔까지 오는데 거의 4시간이 걸렸다. 또 도시철도 계단이 사람으로 꽉 찼다. 다행히 큰 사고가 없었다. 그 당시 부산시는 한숨을 쓸어내렸고, 그 이후로 각종 행사를 열 때마다 질서유지와 사람의 안전에 큰 신경을 쓴다.


지난 10월,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BTS 부산 공연을 당초에 기장의 넓은 부지에서 10만여 명을 관객을 모으는 행사로 계획했으나, 질서와 안전을 감안하여 아시아드 주경기장으로 변경했다. 좋은 결정이었다.


나는 재난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발생하게 되면 재난상황실을 먼저 찾았었다. 부산 전역의 CCTV, 각종 기상 및 재난정보, 각종 예측시스템 등 첨단시설이 갖춰져 있다. IBM의 관련 전문가들이 시스템을 보고 감탄했다. 시스템을 작동시키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조치를 한다. 그래도 늘 불안해서 수정, 보완을 한다.


재난과 안전의 대비는 상상력으로 시작한다.

자연재해든 사회재난이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 안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애써 외면하거나 상상력의 범위를 본인의 한계 속에 가두어 버린다. 재난 대비에서 피해야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번 참사도 조금만 상상력을 넓혀 보면 예측할 수 있었다. 그건 재난 담당자나 그곳에 참여한 시민들도 똑같다.


상상력으로 재난이나 안전이 우려되면 즉각 조치를 하는 실행이 그다음이다.

“설마 일어나겠어?, 괜찮을 거야!, 이번은 아무 일 없을 거야” 이런 안일한 생각을 접고 조치를 해야 한다. 부산시에서 실제 문화공연을 가정한 안전사고 대비 훈련 ‘안전 High콘스트’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적이 있다. 한창 즐거운 노래 중간에 대피 신호를 내면 잘 따라주는 학생과 짜증을 내는 학생이 있다. “안전 그게 뭔 대, 훈련 왜 해” 훈련도 대충 하는데 실제는 잘 지킬까. 안전 불감증이 느껴진다. 


축제,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은 안전관리계획을 마련하여 관할 행정기관에 제출하고, 기관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행사 주최자는 본인의 비용으로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행정의 협조를 얻는다. 


이번 참사처럼 주최자가 없는 경우는 법에 규정이 없으니 서로 책임을 미룬다. 서울시 책임인가, 용산구 책임인가, 서울 경찰청 책임인가, 용산경찰서 책임인가. 보통 거리에서 집회나 시위가 열리는 경우 경찰이 질서와 안전을 유지한다. 관련해서 도로의 통제와 운영도 한다. 거리에서의 축제, 행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역의 재난과 안전에 대한 책임은 지방정부에 있다.


지방정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분리, 소방청 직원의 국가직화 등 재난 관련 일선 행정조직이 뒤죽박죽이 되어있다.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하게 되었다. 이번 참사를 지방정부의 책임만으로 않길 바란다. 경찰청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가 변화하니 재난관리체계도 다시 살펴야 한다.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께 부끄럽고 미안하다.

우리가 안전사고를 미리 대비하지 못해서 부끄럽고, 위험을 알리고 피하는 교육을 미리 못해서 미안하다.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안전에 대한 위험을 인지하고 대처하는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한다.(22.10.31)


#핼러윈  #이태원  #안전사고 #재난관리


작가의 이전글 42. 한국산 고등어를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