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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광효 Nov 07. 2022

44. 안전은 윗사람의 관심과 애정을 먹고 자란다.

해운대 주간 일기 44 – 안전은 윗사람의 관심과 애정을 먹고 자란다.


보고(報告), 보고(報告), 또 보고(報告)............

이것이 지난 일주일간 뉴스의 전부다. 누가 보고했는지, 어디까지 보고했는지, 왜 보고를 안 했는지, 또 왜 보고를 못 받았는지, 몇 시 몇 분에 보고가 이루어졌는지 등등. 이것만 챙기면 해결되는 것인가. 너무나 안타깝다.


독일 유학시절을 4살이 된 딸이 함께 했었다.

학교를 가고 올 때마다 유치원(Kindergarten)에 데려주고 데려왔다. 언제나 선생님께 얼굴을 보면서 인계인수를 해야 했다. 그냥 문 앞에서 혼자 들어가게 하거나, 말하지 않고 데려오는 경우를 용납하지 않았다. 혹 유치원의 다른 부모나 지인이 데려가는 경우 사전에 쪽지로나 또는 직접 말로써 미리 알려야만 가능하다. “오늘 내 딸을 친구, 율리아 엄마가 데려갑니다. 1995.11.5. 배광효”. 이런 쪽지를 참 많이 썼다. 이 원칙이 무너진 적이 없었다. 심지어 데리러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는 경우 연락을 취해보고 연락이 닿지 않으면 인근의 경찰서로 아이를 보낸다고 들었다. 혹시 부모에게 사고가 있어 아이를 제시간에 데리려 오지 않는 게 아닌가를 걱정한다.


또 119 앰뷸런스 소리가 나면 자동차든 보행자든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 길을 터준다. 길거리 통행에서도 우측통행을 지키고,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배려한다. 독일에서 아이 때부터 안전과 질서를 생활 속에서 체득하는 걸 배웠다. 그래서 늘 아이들에게 어디서 무엇을 하든 안전사고를 대비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복잡 다양한 시설과 기계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데 어찌 안전사고가 나지 않겠는가. 안전사고가 무서워 활동 자체를 안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놈의 안전사고는 희한하게도 우리의 빈틈을 너무도 잘 노린다. 아무리 대비해도 그 좁디좁은 빈틈을 헤집고 들어온다. 우리가 방벽을 쌓고 물샐틈없이 방어를 해도 새는 물구멍을 막기엔 한계가 있다. 작은 구멍을 뚫고 들어온 안전사고는 큰 피해를 내기도 하고 작은 피해를 내기도 한다. 또 우리에게 경각심만 주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태원 참사처럼 재난이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제일 시급한 것은 보고가 아니라 초동조치이다. 담당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인가, 위 상사의 지시로 가능한 일인가, 조직의 장의 지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가를 파악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먼저다. 이번 참사에서 용산구 재난상황실, 용산경찰서 상황실에 근무하던 분들의 상황 판단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들이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조치를 했는지를 먼저 조사해 봐야 한다. 그다음에 보고를 받은 기관의 장이 어떤 조치를 했는지 살펴야 한다.


두 번째로 재난 및 안전사고 대응시스템이 있는지, 또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세월호 침몰 후 우린 지겹도록 시스템을 말해왔다. 재난대응 시스템, 구조 시스템 등을 새롭게 만들겠다고 했다.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재난대응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것은 사람이고, 그중에서도 조직의 리더다. 재난과 안전사고는 리더가 관심과 애정을 갖는 만큼 예방된다. 이태원 참사에서 구청장과 경찰서장의 상황 파악과 대응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소위 윗사람인 재난관리자 및 책임자의 재난 대응능력 향상이 중요하다.


세 번째는 재난 및 안전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안전한국 훈련, 을지훈련 등을 통해 민, 관, 군의 합동훈련을 한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을지훈련의 축소 및 키리졸브, 독수리훈련 등이 취소되어 기관장의 관심과 애정이 많이 사라졌다. 대체로 이런 실제훈련은 기관장의 관심이 없으면 ‘대충대충 병’이 도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세월호 침몰 이후 추모와 사고조사를 하느라고 안전교육과 대응훈련에 투입할 열정과 시간이 있었던가. 이제 추모기간이 지났으니 추모집회보다 당장 안전교육과 안전훈련을 한 시간이라도 더 했으면 좋겠다.


재난과 안전사고는 전 사회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줄어든다.

부산은 불꽃축제, 국제영화제, 여름 해수욕장 등으로 전 시민이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지난 10월 BTS 부산 공연도 당초 일광지역을 공연장소로 정했으나, 지역 언론과 시민들이 안전 우려를 제기하여 장소를 변경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서울의 중앙언론들이 사전에 안전 문제를 제기한 보도를 찾지 못했다. 안전보다 핼로윈 축제에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졌다. 행정과 언론, 시민들 모두가 재난과 안전사고 예방에 힘을 모을 때다. 한쪽에만 전부를 기대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늘도 가족과 이웃이 안전하게 살았으면 좋겠다.(22.11.07)


#안전사고  #재난  #재난상황실  #안전훈련  #스마트빅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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