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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광효 May 27. 2024

76. 43년 전에 시작된 만남


해운대 주간일기 76. 43년 전에 시작된 만남


“얄밉게 떠난 님아…….”


우리는 술잔을 앞에 놓고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에는 ‘아침이슬’로 끝을 맺었다. 암울한 그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고 선술집을 찾는 게 일상이었다. 내 개인적으로도 왜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고 방황할 때였다. 경남의 도시, 시골에서 1981년 부산 동아대학교로 유학 온 우리 촌놈들이 자연스럽게 뭉쳤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맥아(麥芽, 麥亞, 麥我), 모임의 이름이다.


보리 씨앗, 촌놈들이 겨울을 이겨내는 보리처럼 이 시대의 씨앗이 되자, 또는 東亞의 씨앗이 되자, 나 자신이 보리처럼 역경을 이겨나가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지은 이름이다. 처음 몇 명이 모임 구성에 의기투합하였고 시간이 흘러 13명이 되었다. 


대학 생활 동안 어울려 다니면서 공감대를 만들고 ‘술집 철학’으로 세상을 논하고 이겨내는 법을 터득했다. 그 세월을 거쳐 입대를 서로 격려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는 과정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늘 함께했다. 연애와 결혼에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43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 열 명의 부부가 2박 3일로 경기도 북한강 어느 한적한 곳에서 모였다.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을 보러 부산, 경남의 친구들이 승용차로 달려갔다. 북한강의 아름다움 속에서 ‘아침고요수목원’, ‘잣향기푸른숲’, ‘다산생태공원’ 등 숲 속을 걸으면서 자연을 만끽하고,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같은 공간에서 잠을 청하면서 서로의 공감대를 넓혔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니 다들 크게 아프지 않았고 직장과 사업에도 큰 어려움이 없이 그동안의 세월을 이겨내 왔다. 친구들 모두가 부부간 이별, 이혼이 없고 자식을 두고 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으로 살아왔다. 이제 직장을 퇴직한 친구는 새로운 출발을 고민하고, 사업하는 친구는 사업의 안정과 마무리를 생각하고, 모두 자식들의 결혼과 미래를 염려하고 있다. 


달님이 동쪽 하늘에서 얼굴을 내밀더니 금방 중천에 떠 있다.


저 달님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길을 내고 있다. 북한강도 서해로 발을 재촉하고 있다. 남쪽에서 친구를 보러 한걸음에 달려온 나그네는 밤하늘을 멍하니 본다. 


모두 잘 살아왔지만, 43년은 생각보다 긴 세월이었다. 살아온 환경이 달랐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다. 은연중에 불쑥 내뱉는 말속에서 다름을 느낀다. 예전처럼 웃고 울고 부대낀 세월이 앞으로도 지속할 수 있을까. 내년 2월에 예정된 첫 해외여행은 이루어질까. 괜한 고민이었으면 좋겠다. 


삶이 공짜가 아니다. 공짜일 수도 없다. 뿌린 대로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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