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주간일기 84. 법관(法)들의 게으름과 비겁함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에 적힌 15자의 구속 사유이다.
구속영장 청구에 따라 전날에 4시간 50분에 걸친 영장 실질심사가 있었다.
그리고 저녁 7시쯤부터 다음날 새벽 2시 40분경에 구속영장을 발부하기까지 양측의 주장을 검토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달랑 15자를 적었다. 국민은 15글자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언론은 오로지 판사의 마음을 헤아리고, 법조인들의 해석을 담아 판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을 추측한다. 궁예가 쓴 관심법(觀心法)으로 구속 사유를 해석하니 제각각 다르다. 그 판사가 판단의 근거를 명확히 밝혀주었으면 이런 논란이 없었을 것이다.
일반 행정에서 민원인에게 민원을 이런 식으로 통보를 하면 바로 민원인이 쳐들어와 사유가 뭔지 캐묻고, 이해할 수 없으면 죽으라 따진다. 민원에 대해 적어도 판단의 근거, 배경 등의 개괄적 사항을 적시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이 법관은 판단의 근거나 주요 쟁점 사항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복잡한 법률적 관점이나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싫은 게으름이거나, 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엄청난 결과에 대한 본인의 판단 근거를 명확히 밝히는 것의 두려움과 비겁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지금의 국민은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라고 판단한 그 판사의 근거를 알 수가 없고, 후세의 국민은 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었는지, 꼭 구속되어야 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국민이 헷갈린다.
헌법재판소는 기관의 존재 가치를 다 잃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이 임기가 다하기 전에 또는 궐위 시에는 지체없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여 기관이 구성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임기가 도래했음에도 국회를 압박하여 조속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요구하지 않아 헌법재판소가 개점휴업을 하다시피 했다. 저 자신의 권리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방통위원장의 탄핵으로 방통위가 행정기관 구성이 안 되어 식물기관이 되어도 ‘나 몰라라’ 내버려 두었다. 헌법재판소는 방통위라는 행정기관이 구성되도록 조속히 탄핵 심판을 마무리해 줄 의무가 있다. 검찰의 핵심검사들이 탄핵되어도 하세월 뒷방 창고에 쌓아둔다. 헌법재판관의 무책임이 하늘에 닿아 있다. 그러고도 소위 ’ 헌법기관‘이란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탄핵되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아우성을 친다. 마치 본인들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그 막강한 권한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대통령의 탄핵 심판엔 엄청나게 과속 질주한다.
국민은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의 탄핵정족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궁금해한다. 헌법 해석의 큰 사례가 될 것이다. 이것도 달랑 몇 줄로 끝내지는 않겠지. 그러면 진짜 무책임하고 비겁해진다.
사법기관에 대한 믿음은 ‘법관’들의 판결에 기인한다.
법관은 국민이 선거로 선출하는 것도 아니고,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할 수도 없다. 그만큼 신분보장을 하고, 그만큼의 신뢰에 대한 책임을 요구한다. 헌법재판관이 기관의 제 역할을 다하지 않고, 법관들이 달랑 글자 몇 개로 판결을 한다면 국민은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
법관들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무책임하게 판결의 근거와 사유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비겁함을 보이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수단과 창구가 없어진다. 헌법기관의 한 축이 무너진다. 우리의 두려움은 여기에 있다. (25.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