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주간일기 85. 43년의 대학 동기들, 부부가 함께 베트남 여행 가다.
작년 가을 막바지에 우리는 남양주 한강 변에 모였다.
2박 3일간의 여행은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너무나 짧고 미약했다. 함께한 세월을 나누기엔 절대 시간이 부족했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키우고 난 이후 은퇴의 시점에서 서로의 삶을 고백하는데 하고 싶은 말들이 넘쳤다. 그래서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큰 결단을 내렸다. 내년 2월에 해외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다. 이번에 9명의 동기가 아내를 모시고 베트남 나트랑, 달랏을 다녀왔다.
우리는 서슬 퍼런 군부독재가 한창이던 81년에 동아대 법정대학에 입학했다. 부산보다는 서부 경남 지역에서 온 촌놈들이 각자 나름의 이유와 아픔을 갖고 대신동 골짜기에 모였다. 부산으로 유학을 온 거라 모든 게 낯설었고, 시대의 아픔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자 하나둘 모여, 춥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보리가 싹을 틔우듯 촌놈이 이곳에서 인생의 싹을 틔우겠다고 ‘맥아(麥芽)’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강의가 끝나면 학교 뒤 대신공원에 모여 현상(現像)을 한탄하고, 막걸리 한잔으로 아픔을 잊고, 모자라면 학사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리는 남포동, 광복동 등 둥지를 찾아 헤맸다. 입영열차를 탈 때는 본가를 방문하여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위로의 술잔을 마주쳤다. 군대에 있는 동안엔 손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고, 전역을 할 때는 무사히 살아왔음을 축하했다.
그리고 우리 서로는 연애하고 결혼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래서 맥아 모임은 처음부터 부부가 함께하는 모임이 되었다. 지난 43년간의 세월 동안 서로의 아픔이 녹아 사그라들고, 기쁨이 넘치고, 이해의 폭이 나날이 커져 이제는 바닷가 몽돌처럼 모난 데가 없다.
이번 베트남 여행은 한마디로 웃고 즐기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불교사원을 가고, 유명 관광지를 가고, 야시장을 가고, 루지와 케이블카를 타는 것보다는 서로 떠들고 웃기고 농담하고 즐기는 시간에 더 집중했다. 피곤하지만 피곤을 느끼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한꺼번에 밀려온 피로감에 힘든 해외여행을 했다는 걸 실감한다.
밤늦은 자정 무렵에 베트남에 도착하여 잠을 청하는 둥 마는 둥 아침 일찍 도심에 있는 ‘롱선사(龍山寺)’를 찾았다. 베트남 민주화를 위해 소신공양한 스님을 상징하는 높이 14m의 거대한 불상이 인상적이다. 대웅전의 불상도 건물의 안쪽보다는 거의 문 앞에 있다.
나트랑의 담 재래시장에서 식료품, 의류, 생필품, 기념품들을 구경하고, 망고 등 열대과일을 맛있게 즐기고, 점심을 해결한 후 버스로 달랏까지 거의 4시간을 꼬불꼬불한 산길을 힘겹게 올랐다. 버스도 힘들어 보이지만, 타고 가는 우리도 급경사의 아찔한 도로를 보면서 멀미가 나올 정도로 어지러웠다.
베트남 달랏은 해발 1,500m에 있는 인구 21만 명의 휴양도시다.
달랏을 “영원한 봄의 도시, 비닐하우스의 도시, 꽃의 도시”라고 부른다. 연간 평균 기온이 18도 내외라 2월에도 반소매 옷에 걸치는 옷으로 충분했고, 봄에 꽃이 피듯이 야외에도 비닐하우스 안에도 꽃들이 넘쳐났다. 다만 아직 도시가 개발 중이라 플라워가든처럼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꽃은 없었다.
달랏의 비닐하우스는 한국인 김진국 교수님에 의해 보급되었다고 한다.
대학을 퇴직한 김 교수님이 달랏 여행을 하다 따뜻하고 쾌적한 기후가 맘에 들어 이곳에 정착했다. 달랏에 생활하면서 한국의 비닐하우스를 이곳에 도입했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생산과 판매시스템을 구축하여 주민의 소득 증대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지금은 각종 꽃, 상추 등 잎채소류 등을 재배하여 수출한다.
달랏에 도착하자 바로 랑비앙산(Langbiang Mt)으로 향했다. 산 중턱에서 지프차로 갈아타고 10분쯤 가니 사방이 탁 터인 전망대가 나왔다. 해발고도 2,167m, 달랏의 지붕이라는 랑비앙산, 그곳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달랏시가지와 주변의 산은 베트남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매력적이지 않았다. 다만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공원과 시설물은 사진찍기에 아주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다. 인생 사진을 찍든지, 이곳에 왔다는 증거의 사진을 찍든지 여행가의 마음에 달렸다.
여행의 첫 저녁을 먹고 호텔의 카페 공간에 모여 수다를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설 명절 연휴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여행객이 없어 우리의 소음이 방해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다딴라 폭포를 보러 타고 가는 레일바이크(루지)는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하는 우리 부부에겐 무서운 시간이었다. 우리가 너무 천천히 자주 브레이크를 잡아, 우리 뒤에 오는, 속도를 즐기는 친구들에게 큰 민폐를 끼쳤다.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좋단다.
죽림사, 해발 1,300m에 있는 넓은 부지에 4개의 사찰과 호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불교사원이다. 수도승은 한번 들어가면 7년을 보낸다고 한다. 정원엔 형형색색의 분재가 가득하고 꽃들도 만발하여 이곳이 사찰일까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이어서 달랏 케이블카를 타고 산과 산을 넘어 베트남 “응우옌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 황제 여름 별장으로 갔다. 아마 황제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프랑스에서 교육받고 돌아와 이곳에서 유배하다시피 살지 않았을까. 역사는 왕조의 마지막은 외롭다는 걸 말한다.
달랏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 크레이지하우스(Crazy House)일 것이다. 베트남 대통령의 딸이 설계했고, 독특한 디자인과 조형물이 설계자의 창조성을 잘 보여준다. 달랏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아닐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달랏 기차역에서 관광열차를 탔다. 한 친구가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화가에게 부부 인물 스케치를 요청했다. 열차 안에서 트럼펫 악사가 한국 가요를 분다. 우리 친구가 마이크를 잡고 트럼펫에 맞춰 한 곡조를 뽑고, 아내가 춤사위를 펼치고 신나게 즐긴 후 탑승객에게 모자를 건넸다. 천원, 천원 십시일반 노랫값을 기부받아 트럼펫 악사의 수고로움에 인사를 했다. 한바탕의 웃음이었고, 에피소드였고, 공연이었고,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열차는 주민의 생활공간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건물에 인접하여 달렸다. 간혹 손을 흔들어 인사해 주는 주민도 있다. 천국의 계단이 있는 카페에서 또 인생샷을 찍고,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린 후 마차 아닌 전기차를 타고 달랏 야시장을 찾았다. 젊은이, 관광객이 어우러진 사람들의 공간이다. 기념품, 생필품을 팔고 먹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젊음의 나라, 베트남이다. 여독을 푸는 마사지를 받고 하루를 마감한다.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다채로운 꽃과 분재가 가득한 플라워가든(Flower Garden)을 산책했다. 베트남은 어디를 가든지 포토 존에 진심인 것 같다. 곳곳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공간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인한다. 위즐 커피를 맛보는 가게에 들러 커피핀 사용법을 배우고,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장거리 버스 여행으로 나트랑으로 돌아와 먼저 여독을 푸는 마사지를 받았다.
시클로(인력 자전거)는 나트랑 시내를 가로지르면서 차량과 오토바이, 보행자 사이를 요리조리 비켜 갔다. 사고가 날 법도 한데 참 잘도 서로를 피했다.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걸까. 신호등보다 사고가 적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직접 시클로를 타고 눈으로 경험하니 놀랍다.
여행의 마지막은 나트랑 야시장을 둘러보고, 나트랑 해변 호프집의 생맥주 한잔이었다.
귀국 길의 비행기가 연착되어 공항 바닥에 둘러앉아 이번 여행을 정리하고 올가을쯤에 충청도 어딘가에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이번 여행에서 “여행에서 목적지보다 동반자가 더 중요하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43년의 세월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쌓이고 쌓여 우리의 관계가 되고 삶이 되었다.
친구들아, 그 세월을 무사히 견디고 잘 살아줘 고맙다. (2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