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부산정보단지와 센텀시티, 해운대구 청사

by 배광효


해운대 주간일기 92. 부산정보단지와 센텀시티, 해운대구 청사


IMF 관리 체제로의 전환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역 금융기관인 동남은행이 퇴출의 아픔을 겪고, 하루가 멀다고 지역의 중견 중소기업이 넘어져 법정관리나 화의 등의 절차로 나아갔으며, 어렵사리 유치한 삼성자동차를 처분한 후 그 부지에 아파트를 건립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등 IMF의 시작은 지역경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부산이 꿈과 희망을 품고 의욕적으로 추진한 수영정보단지 개발사업도 직격탄을 맞아 공동 사업자인 SK그룹이 사업을 포기하고 서울로 가버렸다. 이러한 시기에 부산시는 정보단지 개발담당관실이라는 직제를 신설하면서 사업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으며, 영광스럽게도 내가 담당과장의 중책을 맡았다.


기존 개발계획으로의 사업 추진이 어렵게 되어 새로이 외국회사에 개발연구 용역을 주었고, PM(Project Management) 방식이 도입되는 등 사업의 탈바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부산시와 부산정보단지주식회사가 한 몸이 되어 수시로 또는 합숙하면서 상하 구분 없이 자유로운 토론으로 사업 추진의 난제를 풀기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향후 추진계획을 마련해 나갔다.


기존의 수영정보단지개발주식회사 설치 조례에 따라 『수영정보단지』라는 명칭은, 97년에 시민 공모와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거쳐 지역에 국한된 명칭을 극복하고 세계화, 정보화에 부응하며 21세기 『세계 최첨단 정보도시』로 발돋움하는 부산의 미래상에 걸맞은 명칭인 『부산정보단지(PUSAN TELEPORT)』를 사용해 왔었다. 그러나 SK그룹의 사업 포기 이후 부산정보단지의 개발 개념이 텔레콤센터의 정보통신 센터 위주에서 정보, 영상, 위락관광단지라는 도심 속의 미래 첨단 소도시로 변경되면서 그동안 사용해 오던 『부산정보단지』의 명칭 변경이 불가피하여 명칭 및 CI 변경을 추진하였다.


LG애드 컨소시엄에서 제시한 명칭 중에서 Millennium+Eon/Millennium On으로 영원한 미래 도시의 개념으로 국제성과 규모성이 느껴지는 명칭인 『밀레온 시티(MILLEON CITY)』를 뒤로 하고, 사업 관계자들이 참석한 명칭 선정 회의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바로 그 이름이 『센텀시티(CENTUM CITY)』이다.


영어의 100이라는 숫자를 의미하는 'CENTUM'과 'CITY'를 결합한 복합어로 「100% 완벽한 미래의 첨단도시」라는 의미이며, 어미의 '~UM'이 웅장함과 무게감, 규모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명칭은 처음부터 큰 관심을 끌었고 전문가의 추천도 있었으나, 우리 주변에서 자주 사용하는 '쌤통'이라는 말과 유사하다는 의견 때문에 배제되었다가 살아난 이름이다. 지금은 부산의 거리에서 "센텀··"이라는 명칭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명칭이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보면서 다소나마 안도한다.


센텀시티의 마스트플랜을 만들고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문정수 시장이 정치력을 발휘해서 국방부와의 협상을 통해 수영비행장 부지 매입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나중에 부산시의 재정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애초 사업을 함께 하기로 한 SK그룹의 철수는 센텀시티 개발에 엄청난 자금난을 가져왔다. 결국 단지 북측을 사전에 매각하여 자금난을 해소하는 사업적 선택했고, 산업단지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시민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돌이켜 보면 만약 당시 특혜시비 등이 없이 SK그룹으로 하여금 사업 투자에 좀 더 일찍 300억원에서 500억원 정도만 자금을 투입하도록 했었다면 IMF를 맞아서도 사업에 손 떼지 않았을 것이고 이점은 매우 안타깝다. IMF를 구실로 손 떼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센텀시티 사업의 양태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 문정수 시장님의 회고(센텀시티 백서)


그 당시 센텀시티 개발에 현안 과제로 자금난 말고도 광안대교 접속 지하차도 건설, 동부하수처리장 입지 및 소각장 건설, 지금의 롯데 및 신세계와 도시철도가 연결되는 공간에 대규모의 선큰광장(Sunken Plaza) 등이 있었다.


지하차도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현안이었다.


당초 지하차도는 길이 약 1km에 왕복 10차선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건설 및 운영비용 절감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 보자고 하니, 스마트한 담당 계장이 며칠 밤을 새우더니 각국의 건설 사례를 찾고 센텀시티에 적합한 선큰(Sunken)형태의 지하도로를 제안했다. 센텀시티를 조성하기 위해 부지 성토해야 하니 지하차도 건설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상부 중간에 환풍 공간을 마련하면 운영비도 절감되고, 상부공간을 덮어 보행광장으로 만들어 수영강변공원으로의 보행 접근을 쉽게 하는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정책 참여자들이 동의하였으나, 모 대학교수를 위시한 시민단체의 반대가 심해지더니 시간이 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심하게 반대한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어느 날 건설 및 운영비를 고려한 왕복 6차선으로 축소하는 지하차도 건설계획이 확정되었다. 그 당시 문제 제기하지 않고 반대하지 않았다면 왕복 10차선의 지하차도가 건설되어 지금 논란이 되는 것처럼 추가 지하차도 건설계획이 없을 것인데. 지금도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지금 수영3호교에 있는 달 모양도 그 계장이 제안한 것이다. 직원의 제안에 동의하고도 실현하지 못해 그 후배에게 늘 미안하다. 공직에서 본인의 뜻을 잘 펼쳐나가길 바란다.


사실 해운대구 청사 부지 확보는 마케팅 용도에 가까웠다.


해운대구의 청사가 오래되어 이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 센텀시티 부지로 유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또한 산업단지로 개발되다 보니 하수처리장과 소각장을 건설해야 했다. 소각장은 해운대소각장으로 대신할 수 있었으나, 당시의 법으로는 하수처리장은 새로이 만들어야 했다. 올림픽공원 부지 지하도 후보지로 거론되었으나, 구청사와 패키지로 이웃하게 배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금은 하수처리장이 의무 조항이 아니므로 동부하수처리장은 인근의 수영하수처리장과 통합하고 그 부지는 공공시설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수영하수처리장을 현대화하는 지금 시점이 적기다.


센텀시티는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갈등, 조율 속에서 시민과 함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시민과 행정이 함께 만든 도시의 결정이었다.


도시 전문가 Jane Jacobs는 "도시는 모든 이를 위한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다. 그것은 오직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해운대도 시민과 행정이 함께 꿈을 꾸면 보다 더 좋은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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