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의 승객 일지
#8. 뚝딱뚝딱 맥가이버 승무원
승무원의 하루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으로 가득하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물품 속에서 승객들의 니즈를 해결해야 하는 승무원은
때로 간호사, 경찰, 선생님, 요양보호사, 심지어 정비사 역할까지 소화한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구두 수선공’으로 활약했던, 맥가이버 승무원이 된 날의 이야기다.
한적한 평일 점심, 텅 빈 KTX 객실 안에는 햇살만 가득하다.
나른함에 몸도 마음도 풀어지려던 그때였다.
객실 중간쯤,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던 한 승객이 눈에 띄었다.
단정한 정장에 깔끔하게 묶은 머리, 그리고 손에 꼭 쥔 노트.
그녀는 열심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면접 날 어떤 질문이 나올까 고민하며 긴장해하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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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미소 지으며 옛날을 떠올리던 순간, 그녀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승무원님, 혹시 강력접착제가 있으신가요?”
“강력접착제요? 열차에 따로 실리지 않는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저.. 신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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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민 구두는 마치 기력이 다한 듯 밑창이 뚝 떨어져 있었다.
덜렁거리는 밑창이 “이제 나 좀 쉬게 해 줘”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마치 곧 밑으로 떨어질 듯 한 내 피로한 눈꺼풀처럼.
“어머, 이거 어떡해요.. 손님.. 면접 보러 가시는 길 아니세요?”
“네.. 아까 역에서 뛰다가 이렇게 됐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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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객실 순회를 하며 봤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반짝이는 눈빛, 떨리는 입술.
그 모습이 안쓰러워 심장이 조금 찌릿했다.
‘이거 그냥 넘어갈 수 없지.’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곧바로 승무원실로 달려갔다.
승무원 캐리어는 만물상이다.
비상약품, 바늘과 실, 테이프, 가위.. 없는 게 없다.
나는 그중 가위, 테이프, 스테이플러를 꺼냈다.
마치 ”오늘은 내가 수선공이다!” 외치는 기분이었다.
“손님, 제가 뚝딱뚝딱 고쳐볼게요!”
“정말요? 괜찮으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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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보겠다는 마음으로 스테이플러를 들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이게 진짜 될까?’ 싶었다.
테이프를 촘촘히 감고, 스테이플러를 한 번 누를 때마다 그녀의 시선이 신발에서 내 손으로, 다시 신발로 움직였다.
‘오, 조금 모양이 잡히는데?’라는 내 독백이 들렸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내가 ‘뚝딱뚝딱’ 신발을 고치는 동안, 그녀는 옆에서 조마조마한 눈으로 지켜봤다.
유니폼을 입고 구두 밑창을 고정하는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이건 거의 KTX 공방인데요?”
내 말에 그녀가 웃으며 긴장을 조금 내려놨다.
결과물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신을 수는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신발을 건네며 말했다.
“자, 손님! 임시방편이지만, 면접장까지는 무사히 가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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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진짜 감사합니다.. 덕분에 발이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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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회사 홈페이지에 칭찬 민원이 올라왔다.
“덕분에 면접도 잘 보고 곧 결과가 나오는데, 아마 합격할 것 같아요. …
자신의 일처럼 공감해 주시고 해결을 위해 힘써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너무 감동이었어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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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글을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없는 편이었다.
이것저것 고치기는커녕, 내가 손만 대면 고장이 나곤 했다.
오빠들은 내가 컴퓨터에 손대면 바이러스가 생긴다고 경고했고,
빌린 옷을 찢어 반납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승무원이 되어서 느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손재주도 부족한 경험도 결국엔 뚝딱뚝딱 채워지기 마련이라는 걸.
나 또한 테이프 몇 줄과 스테이플러만으로도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는 맥가이버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니 여러분도 혹시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땐,
그저 한 발 내디뎌 시도해 보길 바란다.
손재주 없는 나도 해냈으니까, 여러분도 뭐든 뚝딱뚝딱해낼 수 있을 거다.
(물론 테이프와 스테이플러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결과가 어찌 됐든, 그 정성은 분명히 누군가의 기억에 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