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의 승객 일지
#7. 노숙자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편견의 반전
[편견 :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일반적인 견해, 편향된 견해.]
나는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솔직히 말해 꽤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의 편견은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된다.
특정 옷차림, 말투, 또는 내가 과거에 겪었던 유사한 상황의 기억들.
승객을 매일 마주하는 승무원 생활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나만의 데이터를 쌓아왔다.
어느새 그 데이터가 ‘촉’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열차 출발 15분 전, 객실 승무원들은 담당 구역에서 승객들을 맞이한다.
우리는 이를 ‘영접인사’라고 부른다.
그날, 나는 한 노숙자 행색의 할아버지를 보며 직감적으로 생각했다.
‘아, 오늘 뭔가 일이 생기겠구나.’
그분은 커다란 캐리어에 어디선가 주어온 물건들로 가득 채운 채, 무겁게 질질 끌고 있었다.
몇 겹으로 껴입은 옷은 서로 어울리지 않았고, 그가 지나갈 때의 냄새가 객차 안을 잠시 채웠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온갖 불편한 상상이 스쳐갔다.
‘승차권은 제대로 끊었을까?’
‘객차에 냄새가 나서 민원이 들어오면 어떡하지?’
‘혹시 검표하다가 나에게 해코지를 하면 어쩌지..’
결국 나는 내 안의 편견을 억누르지 못하고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러한 불안한 마음을 안은채, 우리는 용산 출발을 알리는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한 승객이 나를 불렀다.
“아가씨, 나 잘못 탔네. 이거 방향 반대잖아.”
지난 화에서도 말했듯 정당한 승차권이 없이 잘못 탑승한 승객에게는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규정이 있다.
나는 친절히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그의 반응은 폭언에 가까웠다.
“뭐? 내가 왜 내야 해? 말 안 했으면 그냥 갈 수 있는 거잖아!”
“손님 저희 승무원들은 좌석에 앉아계시면 순회 시에 좌석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좌석 확인 중에 발견되셨더라도 똑같이 안내드렸을 겁니다.”
“뭐라고? 너 몇 살이야? 내가 돈 안내면 어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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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나는 그의 거친 태도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열차 총책임자인 팀장님께 무전을 드리며 승무원실로 향하려는데, 그가 나를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이, 거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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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한 그림자가 그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노숙자 할아버지였다.
그는 굽은 허리를 펴고, 분노한 남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
“어이, 여기 계신 승무원님이 뭐 잘못했다고 그러는 건가? 힘들게 일하는 분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잘못한 건 네 쪽이잖아. 조용히 하고 앉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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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도움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나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했던 그가,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될 줄이야.
미안해지는 내 마음을 어쩌면 좋은지.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그것이 내 상식과 판단의 틀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그날 비로소 깨달았다.
노숙자 행색의 할아버지는 정당한 승차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냄새로 가득 채운 객차의 민원은 들어오지 않았고,
나에게 해코지는커녕 도움을 주었다.
5년간 쌓아온 데이터로 공정한 판단을 한다고 믿었지만,
그날 할아버지를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편견은 타인을 판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가진 좁은 시야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당신은 어떤 편견이 있는가.
누군가의 진정한 모습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편견을 깨뜨릴 기회가 온다면, 그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조금이나마 답을 찾았다.
누군가를 마주할 때,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않고,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려 한다.
나 또한 누군가의 편견 속에서 판단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