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의 승객 일지
#6. 시각도우미에게 나의 목소리란
“목소리가 예뻐요. 좋으시네요.”
“방송할 때 목소리가 달라지는 게 멋져요!”
일상에서도, 승무원으로서도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솔직히 나도 내 목소리가 꽤 예쁜 것 같다.
대학시절 피아노 전공을 할 때, 매년 정기연주회를 위해 피아노와 성악 전공생들이 합창을 준비했다.
피아노 전공생들은 알토를, 성악 전공생들은 소프라노를 맡았지만 부족한 성악 인원을 채우기 위해 일부 피아노 전공생들이 소프라노로 발탁되었다.
발탁된 두 명 중 하나가 바로 나였다.
취미 합창단도 아닌 전공생들과 교수님 앞에서 소프라노로 노래했던 그 경험은
내게 나의 목소리에 대한 자부심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나에게 자랑거리이다.
하지만 3년 차 승무원이 되면서, 다양한 일들로 인해 8옥타브 같던 나의 꾀꼬리 목소리는 낮음 음자리 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내려갔다.
늘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못하던 시절,
어느 날 한 승객을 만나며 나의 목소리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시각도우미 : 시각 장애인 승객이 열차 이용 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탑승 전 역무원의 안내에 따라 열차 객실승무원에게 인계 후, 열차 안에서의 안내와 승하차를 함께 도와드린다]
그날 광주송정역에서 탑승한 한 시각 장애인 승객은 종착역인 용산까지 가시는 분이셨다.
원래 같으면 탑승 시 안내를 드리고 종착역인 용산에서 뵐게요, 하고 끝나는 업무였겠지만,
왠지 그날은 내가 더 자주 말을 걸게 되었다.
“손님, 승무원입니다. 좌석은 괜찮으신지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네 중간에 화장실을 가고 싶을 것 같아요.”
“그럼 순회할 때 여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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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객실을 순회하며 다시 말을 걸었다.
“손님, 승무원입니다. 혹시 지금 필요하신 거 있으실까요?”
“화장실 지금 다녀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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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물이나 아님 좌석에 불편한 것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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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종착역에 가까워졌을 때, 하차 준비를 돕기 위해 통로에 위치한 간이 좌석으로 옮겨드리며 짐도 함께 챙겨드렸다.
시각 도우미를 안내할 때는 승객의 편의를 위해 내 팔꿈치를 내어주는 것이 규정이다.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내 팔꿈치를 의지해 걸어가는 그분의 손길을 느끼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우리 사이에 깊은 연결이 느껴졌다.
“손님,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오늘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하고 조심스레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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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 살인마 같은 나의 질문 끝에 들려온 그녀의 말.
“승무원님. 제가 병원 때문에 열차를 매주 이용하는데, 제가 승무원님의 얼굴과 표정은 볼 수 없지만 정말 좋으신 분 같아요.”
“어머, 감사합니다. 그걸 그렇게 느껴주신 건가요?”
“네, 목소리에서 다 느껴져요. 좋은 사람이란 거요. 저는 남들이 보는 걸 못 보지만, 목소리로 다 볼 수 있어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야 눈물핑.
승무원으로서 나를 무너뜨릴듯했던 회의감과 지쳐있던 마음이 그분의 한마디에 사라지는 듯했다.
서비스직인 승무원은 손님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평가된다.
목소리, 표정, 미소, 단정함… 모든 요소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시각 장애인 승객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그중 하나의 요소가 전부일 수 있다.
사람마다 다 잘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그 하나마저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기보다 한 가지를 꾸준히 잘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장점은 존재하고, 내가 가진 목소리도 바로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강점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
그날 권태로움과 무심함이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했다는 반성도 생겼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내가 지닌 장점이 권태로 인해 빛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생각으로 버텨보려 한다.
‘혹시 내 목소리가 나의 비밀무기?’ 늘 빛을 잃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