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의 승객 일지
#9. 꽤 괜찮은 나의 직업병
승무원으로서 생긴 직업병이 참 많다.
24시간을 5분 단위로 알람 설정하기,
일상에서 누군가 어려움을 겪으면 먼저 다가가 묻기,
스케줄 근무로 생긴 불면증,
객실 방송으로 굳어진 ‘열여덟 시, 스무 시’라는 표현,
소화기와 AED 위치 항상 확인하기,
어디에서나 출입문을 열 때 꾸벅 인사하기,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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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직업병이라기보다, 승무원으로서 익힌 직업 습관에 가깝다.
이런 습관들 덕분에 나는 일상에서도 가끔 오지랖을 부리거나, 안전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문을 열 때 자동으로 꾸벅 인사를 하는 나 자신을 보며 직업병의 힘을 실감한다.
심지어 친구들이 농담을 던질 때에도 나는 자연스럽게 크게 웃는다.
“와, 진짜?”라고 기계적으로 공감하다 보면 이런 말이 돌아온다.
“와, 그냥 웃어주는 거 봐. 역시 서비스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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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서야 깨닫는다.
내가 진심으로 웃은 건지, 자동응답 AI처럼 반응한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도 이런 직업병들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나의 직업병, ‘늘 웃는 표정 하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객실을 순회하며 손님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다.
‘싱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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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통로를 지나거나, 화장실 상태를 확인하거나, 특실 서비스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작은 미소는 때로는 말을 건네는 계기도 하고, 때로는 인사를 받거나 문의를 받기도 한다.
그 반응이 어찌 되었든, 나의 표정은 손님들에게 작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 같다.
특히 간의석에 앉아있던 한 손님이 떠오른다.
케이지에 반려견을 넣고 탑승하셨던 그 분과는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순회 중 눈이 마주쳤을 때 자연스럽게 지었던 나의 미소 하나가 기억에 남았나 보다.
며칠 뒤, 그분이 내 미소가 인상 깊었다며 칭찬 민원을 넣어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했던 작은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깊은 인상과 여운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 직업병이라 여겼던 것들이 꽤 괜찮을 수도 있다는 걸.
또한 내가 의도하지 않는 곳에서 나를 모두가 판단하고 평가하고 있다는 것.
그러기에 나의 행동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것.
누군가에겐 가식적이라고 했던 나의 행동하나 가 누군가에게는 행복감을 준다는 것.
직업병이라 불리는 습관들은 내 일상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노약자나 임산부에게 자연스럽게 배려하거나, 출입문에서 꾸벅 인사하는 모습에 누군가는 칭찬을 건넨다.
그 칭찬을 받을 때면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진다.
아! 알람을 잘 쪼갠 덕분에 약속에 늦지 않는 성실함도 생겼다.
물론 승무원이라는 직업 덕분에 생긴 힘든 습관들도 있다.
스케줄 근무가 가져온 불면증이나 가끔 찾아오는 과도한 책임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직업병은 양면성이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해롭지 않다면, 나는 이런 직업병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살 것이다.
‘꽤 괜찮은 나의 직업병.’
그대들에겐 어떤 직업병이 있는가?
그것들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결국 병이라 생각하면 나만 지치기 마련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