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의 승객 일지
#10. ‘살려줘요’ 눈빛으로 보내는 구조신호
나는 사람의 눈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고들 한다.
안 그래도 촉이 좋은 나는, 누군가의 눈을 보면 감정의 결을 읽는 습관이 있다.
입사 초, 아직 햇병아리 승무원이었던 시절이었다.
달리는 KTX 안에서 자살기도를 한 한 여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깨끗한 피부, 정성스레 말아 올린 단발머리, 붉은 틴트를 바른 입술.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의 그녀는 많아 봐야 중학교 2학년쯤 되어 보였다.
열차 출발 전, 승객을 맞이하며 그녀를 처음 마주쳤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또래 아이들에게 흔히 보이는 밝음이나 호기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어디가 아픈 걸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아니면 친구들과 싸운 걸까?’
순간 지나치듯 스쳐 간 그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승객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특징을 기억해 두는 것은 승무원의 본능 같은 것이다.
특이사항을 기억해 놓으면 예상치 못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내 머릿속에 그녀의 모습이 강렬히 남아 있었다.
열차가 출발한 뒤, 객실을 순회하며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까 그녀가 매고 있던 백팩이 보였다. 빈 좌석에 덩그러니 있는 백팩.
그 좌석과 가까운 여자화장실이 사용 중 표시가 켜져 있었다.
‘화장실에서 잠깐 쉬고 있나 보다.’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그때 팀장님이 다급히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너무 울면서 탑승하던 승객이 있었는데 혹시 확인된 사람 있나요? 걱정이 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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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머릿속에서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같은 사람을 암시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 단발머리 여학생인가요? 그 학생 14호차 화장실에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잘 확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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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는 14호차 주변을 계속 확인하며 화장실에서 반응이 있는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열차는 종착역까지 1시간밖에 남지 않은 남원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승무원들은 매뉴얼에 따라 화장실이 오래 사용 중이면 이상 반응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반응이 없으면 열차의 만능 ‘사각키‘를 이용해 개방하도록 되어있다.
“용산을 출발한 지 얼마나 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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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혼잣말과 동시에 경찰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모든 것을 확실히 해주었다.
”학부모와 담임선생님께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열차에 탄 학생이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해서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바로 화장실 문 앞으로 달려갔다.
“손님, 괜찮으세요? 똑똑. 대답 없으시면 문을 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다.
곧바로 팀장님과 선배님께 상황을 보고하고, 사각키를 사용해 문을 열었다.
열쇠를 돌리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문이 천천히 열리며 그 안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심장이 다시 요동쳤다.
역시나 그곳에서 그녀는 자살기도 중이었다.
얼른 그녀를 붙잡고 화장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엉엉 울며 내게 안겼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요.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요.”
나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한참을 토닥였다.
이후 응급처치를 해준 뒤 그녀를 남원역에서 응급차로 이송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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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회사로부터 그녀의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사후 보고를 받았다.
“학생은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부모님 품에서 안정을 되찾고 있습니다.
승무원님이 잘못된 선택을 막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안도와 함께 생각이 많아졌다.
만약 내가 그녀의 눈빛을 놓쳤더라면?
그저 ‘본 업무만 잘하면 된다’며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 보내는 구조 신호를 쉽게 지나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판단하거나, 나와 상관없다며 외면할 때가 많다.
하지만 누군가의 마지막 간절함을 알아채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나 또한 그런 신호를 보내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차가운 시선들 앞에서 결국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내가 먼저 변해 보려고 한다.
우연히 건넨 따뜻한 눈빛 하나가 누군가의 세상을 바꾸는 순간,
그 시선은 나 자신에게도 따뜻한 울림으로 되돌아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