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은희 Mar 07. 2018

방관자였던 우리들에게

드라마 하얀거탑이 다시 방영되고 있다. 나는 이번에 이 드라마를 처음 보는데, 요즘 스토리는 주인공의 의료과실을 밝히려는 유가족의 사투와 절망이다. 소송에서 패한 유가족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어차피 안되는거죠?"



#1.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한다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말을 하든, 글을 쓰든 어떤 방법이든간에 남에게 전달할때 비로소 생각은 의견이 되고, 작든 크든간에 힘이 생긴다.



#2. 교육의 문제인지, 민족성의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나'의 의견을 내는것보다 '전체'의 의견에 수긍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사회인이라고 느끼는 우리는, 의견을 내는것에 익숙하지 않다. 물론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의견을 내는 이들은 소수지만, 그들이 낸 의견은 늘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목소리를 높이며, 점점 자신의 의견을 내는것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힘이 있는 소수가 내놓은 의견은 소심한 다수가 침묵하는 가운데 관철되고, 실제 옳고그름과 상관없이 옳다고 여겨진다.  



#3. 더욱 안타까운 점은, 정작 의견을 내야할 정말 소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어느 집단이든 놀라우리만큼 비슷한 비율로 존재하는 소위 오피니언 리더로 포장되는 가해자와, 방관자들로 인해 무기력이 학습된 소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잊게된다. 어쩌면, 몇번의 시도끝에 내린 체념적 결말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목소리가 작은 소수의 사람들은 부당함을 느끼더라도 참는것에 더 익숙하다.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 혼자 들어야했던 그들은 어느 순간 한계점에 다다르면 그냥 그 자리를 피해버린다. 말해도 바뀌는건 없기에.



#4. 생애 가장 큰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마이크앞에 선 그들에게, 왜 진작 의견을 말하지 않았냐고 하는것은 가혹하다.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했을때 귀기울여주지 않았던 방관자들은, 이제와서 왜 말하지 않았냐며 그들을 다시 코너로 몰아간다.



#5. 물론 사회적으로 보편타당한 진리와 도덕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만큼 다수의 의견은 옳은 경우가 많고, 세상에는 평범한 소시민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혹자중에는 이제와서 소수에 편승하여 발언의 기회를 잡아 꾸며내는 거짓도 존재할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 아무것도 명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더이상 갈곳없는 소수를 벼랑끝으로 몰아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방관자였으면, 방관자답게 끝까지 방관하는게 더 도와주는것일지도 모르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